가을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청명한 하늘에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이다. 날씨 하나에도 여러 감정이 생겨난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극심한 불안과 상실감,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기후 우울증(climate depression)’이다. 지난해 발표한 모건스탠리의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출산을 꺼리는 결과도 가져온다고 하니 실로 인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전 세계가 발 벗고 나섰다. 자본시장 또한 예외는 아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시작했다. 자본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다. 개선이 시급한 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를 모아 ‘ESG’라고 이름을 붙였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 속에 ESG 투자와 ESG 경영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하지만 가는 방향이 옳다고 해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ESG의 도도한 물결에 역풍의 조짐이 보인다. ‘ESG 전도사’를 자처하던 블랙록은 “기후변화 대책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며 최근 입장을 바꿨다. 무리한 탄소 중립 정책이 기업의 성장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한술 더 떠서 “ESG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ESG지수에서 테슬라를 빼고 석유기업인 엑손모빌을 포함하자 크게 분노한 것이다.
ESG를 둘러싼 여러 잡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직 ESG가 단단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탓도 크다. ESG가 한철 유행이 아닌 지속성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ESG 평가 방식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ESG 평가기관마다 고유의 철학을 반영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같은 기업을 놓고서도 S&P는 친환경이라는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반사회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다만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기업의 ESG 정보가 더욱 활발하게 공유돼야 한다. 아직 많은 기업들이 ESG 공시에 서툰 것이 현실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시 표준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우리 기업의 여건을 고려한 한국형 ESG 공시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ESG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 ESG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공시 표준을 만드는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더 많은 자금을 ESG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뜻이 있는 곳에 ‘돈’이 있다.
46억 년 된 지구를 하루로 압축해보자. 최초의 단세포동물은 오전 4시에 나타났고 공룡은 오후 11시쯤 나타나 11시 39분에 멸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오후 11시 58분에 나타났다. 인류는 기후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ESG는 자본의 힘으로 지구를 구한다. 이것이 ESG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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