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내 한 유통 대기업에 재직 중인 임원 A 씨는 최근 30대 부하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다가 얼굴을 붉혔다. 부서 내에서 나누기 애매모호한 새 업무를 맡아달라는 A 씨의 말에 부하 직원이 “제 업무도 아닌 것 같은데 이걸 왜 해야 하나요”라고 맞받아쳤기 때문이다. A 씨는 “소위 말하는 ‘까라면 까야지’ 마인드로 직장 생활을 했던 우리 때 방식이 요즘 세대에는 통하지 않는다”며 “‘이걸 왜 당신이 해야 하는지’를 일일이 설명하려니 답답할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2. 금융권에서 일하는 팀장 B 씨도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달라는 90년대생 팀원의 요구에 쓴웃음을 지었다고 털어놓았다. B 씨는 “요즘 들어서는 팀원들의 상향 평가도 인사고과에 중요하게 반영되다 보니 예전처럼 ‘그냥 해’라고 강요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 이른바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자)의 ‘3요’ 주의보가 확산하고 있다. 상사의 업무 지시에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젊은 직원들의 반응을 3종 세트로 묶은 신조어다. 군소리 없이 지시를 따르던 기성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MZ세대의 반발에 각 기업 간부들은 새 기업 문화 조성을 두고 머리를 싸매는 분위기다. 일부 대기업은 아예 사내 임원 교육으로 3요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식을 전파하고 나섰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일부 기업은 최근 임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기 오프라인 교육에서 3요의 의미와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을 자료로 만들어 배포했다. 교육 담당자는 임원들에게 개인주의가 강하고 자아가 확고한 MZ세대 직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쏟아내는 3요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걸요’라는 질문에는 해당 업무의 목적을, ‘제가요’에 대해서는 업무를 통해 직원이 낼 수 있는 성과를, ‘왜요’에는 회사에 안길 수 있는 기여를 각각 설명하는 식이다.
3요 교육을 받은 한 기업의 임원은 “젊은 직원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다고 해서 그들이 근로 의욕이 없거나 불성실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MZ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3요에 대해 납득을 해야 업무 지시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방이 아닌 쌍방 소통을 요구하는 MZ세대의 이 같은 특성은 지난해 재계를 뜨겁게 달군 저연차 직원들의 ‘돌직구 상소문’과 그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 1월 SK하이닉스(000660)의 4년차 직원이 “성과급 산정 방식을 밝혀달라”며 회사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2만 9000명에게 항의 e메일을 보낸 게 그 시발점이다. SK(034730)하이닉스는 이에 성과급 지급 방식을 노사 협의를 거치는 체계로 일부 바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아예 자신의 연봉을 반납하기까지 했다.
젊은 직원들의 성과급 반란은 삼성전자(005930)·대한항공(003490)·네이버·카카오(035720) 등 다른 대기업들로 번져나갔다. 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직접 사내 게시판이나 간담회 등을 통해 입장을 밝히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회사의 방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주장하는 MZ세대에 맞춰 기업 문화가 재편되기 시작한 셈이다. MZ세대를 품으려는 노력은 기업 총수들에게도 최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당장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부터 8·15 광복절 복권 이후 각 사업장을 방문하며 MZ세대 직원들과 접점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8월 26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은 이 부회장은 “어머님과 계시면 부회장님께 잔소리 많이 하시느냐”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직원의 돌발 질문에 “어머니가 아들 걱정에 비타민 많이 먹어라, 맥주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하셨다”며 솔직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차(005380) 회장도 올 6월 오은영 정신의학과 박사를 초청한 토크콘서트에서 직접 무대에 올라 MZ세대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당시 정 회장은 “저는 X세대지만 우리 조직에는 MZ세대가 있어 세대 간극이 있다”면서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해야 하느냐”며 조언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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