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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PF 부실' 두달전 감지하고도 손 놔…"위기대응 낙제점 수준"

■커지는 금융당국 책임론

채권시장 위험수위 달했는데…RP매입 등 특단 대책없고

증안펀드 효과 높일 '공매도 전면 금지'도 골든타임 놓쳐

시장선 "공갈포만 쏴…컨틴전시 플랜 있는지 의문" 불신


레고랜드 개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최종 부도 처리가 된 4일. 여의도 증권가는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의 대출 채권 지급 의무 거부에 패닉에 빠졌다. 다음날부터 ABCP를 보유한 증권사는 손실을 줄이기 위한 떠넘기기에 들어갔다.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는 동안 금융 당국은 조용했다.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채 모니터링 강화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한 달 전 연 3~4%였던 ABCP금리가 7%로 오르고 차환 발행까지도 거부되는 등 CP 시장이 발작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도 금융 당국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오만인지 무지인지 모르겠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9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이창용(왼쪽부터)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연이은 한국은행의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에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ABCP 부도가 겹치면서 2020년 3~4월 위기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당장 채권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전날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공모회사채 수요예측 실시 현황’에 따르면 올 3분기 공모 무보증사채 수요예측 종목 수는 총 65건(5조 5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3% 감소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 총력전을 펼치던 과거와는 금융 당국의 대응이 달라졌다. 총사령탑이 부재한 가운데 정부 부처 간 정책적 협력은 보이지 않는다. 금융 당국은 단기자금 시장 등에서 국지전만 펼친다. 금융 당국 내부에서는 총탄을 아껴가며 일종의 ‘살라미 전술’을 구사한다고도 한다. 위기가 고조되는 단계 단계마다 채안펀드 재가동 검토, 금융위원장 특별 지시, 실제 매입 등 대응 수위를 점차 높여가는 방식이다. 큰 한 방 없이 잽으로 포인트만 쌓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채권시장의 생명인 신뢰가 무너졌다. 한 증권사 직원은 “계속 공갈포만 쏴대다가는 무너진 시장의 신뢰를 다시 세우기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채안펀드 외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차원에서 시행된 한국은행의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및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 등의 대책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PF발 제2금융권 부실 가능성은 코로나 이후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며 이미 예고됐다. 금융 당국은 PF 대출이 많은 캐피털·저축은행은 물론 보험사에도 위험 상황을 경고했다. 대책도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주재하는 금융 리스크 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부동산 PF 문제는 단골 소재였다. 특히 두 달 전 열린 TF에서는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이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한 부동산 PF 부실화 위험, 기업어음(CP)금리 상승 등에 따른 단기자금 시장 경색, 환율 변동에 따른 환손실 위험 등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주가지수·채권금리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상승)할 경우 증안펀드, 채안펀드, 공매도 제한 등을 실시하는 위기 대응 프로그램의 정례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위기에 대한 낮은 인식은 원론적인 반대를 불렀다. 위험 투자에서 얻는 수익은 사적 이익으로 귀속되는 반면 이로 인한 금융 불안은 공적 부담으로 조성되는 시장 안정 조치의 비대칭성 탓에 금융 당국은 시장 개입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자기 실현적 위기설을 지나치게 경계하다 보니 위기 인식이 낮아진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여기다 정권 초기 정치권 눈치보기도 이번 ABCP 사태를 키웠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검사 출신인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눈치를 보느라 수수방관해온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금융 당국이 채권시장에서 신뢰를 잃었다면 증권시장에서는 심리를 악화시켰다. 증안펀드와 공매도 금지 등 증시 안정을 위한 조치를 하는 데도 당국이 적절한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앞서 증안펀드는 코스피지수가 2200 선이 수차례 깨진 후인 9월 말이 돼서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집행 기준 등은 나오지 못했다. 실제로 캐피털콜을 통해 10조 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전 세계적 긴축 기조에 유동성을 최대한 긴축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증안펀드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공매도 거래 대금은 9220억 원으로 전날 대비 2471억 원(36.6%) 급증했다. 코스피는 7722억 원으로 거래 비중이 9.34%에 이르렀다. 2020년 3월 공매도 전면 금지 당시 공매도 금액은 1조1000억 원에 육박했다. 공매도 금지에 대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의견도 다른 상황이다. 금융위는 신중 모드를, 금감원은 시행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다양한 카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하지만 명확한 답은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또 검토만 하다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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