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기록의 나라였다. 궁궐이나 종묘, 왕실 사당을 새로 짓거나 심지어 수리할 때도 세세한 내용을 모두 기록했다. 이렇게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난 후 그 전체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것을 ‘의궤(儀軌)’라 하고, 그 중에서도 공사나 수리에 관련된 것은 ‘영건(營建)의궤’라고 불렀다. 태조의 선조 신주를 봉안하던 종묘 뒤쪽 영녕전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자 1667년 현종이 수리를 추진했다. 이 과정의 기록이 ‘영녕전수개도감의궤’인데, 공사를 시작한 배경부터 사용한 자재의 종류와 수량, 공사에 참여한 장인의 품삯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기술직 장인은 쌀 9말과 포 2필을 받았다.
조선 왕실의 주요 행사와 의례의 내용을 상세히 만나고,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 사회상을 엿보게 하는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가 11월 1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개막한다. 의궤는 왕이 읽는 ‘어람용’ 1권을 포함해 한번에 3부, 많게는 9부를 만들었고 국가 기록물을 모아두는 사고(史庫)에 보관했다. 궐내 규장각과는 별개로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보물처럼 관리했지만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의궤를 가져가 버렸다. 외규장각 도서들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중국 서적으로 분류된 채 잠들어 있다가 1978년 박병선(1928~2011) 박사에 의해 한국 유물이라는 것이 발견됐다. 박 박사의 고군분투에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까지 더해져 2011년 5월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145년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0년간의 의궤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297권 전체를 보여주는 최초의 전시다.
전시장 입구에는 의궤 한 권 한 권을 보관하던 사고를 재현해뒀다. 기록물의 양이 얼마나 방대했는지를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기록된 행사 성격에 따라 책의 두께도 천차만별인데, 장례와 관련된 기록이 유독 두툼하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하던 해에 제작된 효종의 장례과정에 관한 의궤는 상·하 2권으로, 각 295장과 22장으로 제작됐다. 장례를 주관하는 국장도감의 설치, 5개월 뒤 시신을 영릉으로 옮기는 과정, 창경궁으로 돌아와 문정전에 신주를 봉안하기까지 국왕 장례의 전 과정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상(上)권 마지막에는 30면에 걸쳐 ‘발인반차도’가 수록됐다. 지금으로 치자면 발인행렬의 사진기록인 셈이다. 참석자들의 배치와 복식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1846년 헌종이 아버지인 익종(효명세자)의 능을 옮겼는데, 실록에서는 이를 단 3줄로 적었다. 반면 의궤에는 그 절차를 총 9권에 걸쳐 자세히 기록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tvN드라마 ‘슈룹’에서 자주 언급되는 국본(國本), 즉 왕세자를 정하는 책례(冊禮)도 의궤 기록으로 전한다.
전시를 준비한 임혜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의궤는 예법에 맞는 행사를 치를 수 있게 한 왕을 위한 책이자, 후세를 위한 모범적 선례로서 영구히 전해야 할 왕조의 정신적 문화자산”이라며 “실록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록한 의궤는 결과보고서의 수준을 넘어 국가 주요 사업의 추진 원리와 지향점을 보여주는 국가 경영 지침서”라고 설명했다. 전시품은 총 460점이며, 내년 1월 중순 한 차례 작품 교체를 통해 의궤 297권을 모두 선보인다. 내년 3월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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