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
‘미술관’을 생각하면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이 먼저 떠오른다. 아부다비에 생긴 장 누벨의 루브르미술관, 올해 개관을 앞둔 로스앤젤레스의 루커스 뮤지엄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미술관이다. 빌딩이 숲을 이룬 도시 속에서 뮤지엄은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파격적이고 아름답다. 반면 클레어 비숍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뮤지엄이 예술적 통찰보다 스타건축(Star architecture)에 압도돼 포퓰리즘의 사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거대한 미술관에서 문화적 갈증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인증샷을 많이 찍었다고 좋은 관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건물 중심에서 소장품 중심으로, 그리고 프로그램 중심으로 뮤지엄의 정의는 변화하고 있다.
거대한 신전같은 미술관과 반대로 명확한 설립 취지와 소장유물을 가진 소규모 뮤지엄이 있다. 예를 들어 종로구 가회민화박물관(2002년 개관)과 성동구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2007년 개관)이다. 이들 미술관은 공간을 임대해 운영해오고 있다. 국가나 기업에서 수백억 원의 자본을 투입해 건립하는 공룡같은 초대형 문화 기반시설 사이에 이들 작은 뮤지엄은 각 영역의 선두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 기관은 하드웨어의 후광효과가 없어도 콘텐츠의 힘으로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면서 15년, 20년을 지속해오고 있지만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헬로우뮤지움의 경우 성동구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고자 마련한 안심상가에 입주해 성동구청에 월 사용료를 내며 운영한다. 비영리 미술관, 박물관에는 어려운 일이다.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서 낙후된 구도심지역에 예술가와 문화시설이 모여들고 머지않아서 상승한 지가를 못 이겨 예술인들이 떠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미국 소호(soho)에서부터 한국의 가로수길까지 국적을 초월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술이 떠나고 사람도 떠나고,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이 피해는 예술기관으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과거의 여러 사례들은 말해준다. 상업화된 지역은 매력을 잃고 머지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또다시 텅 빈 도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자구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특히 자립형 뮤지엄이 기업이나 공공의 영역과 협업을 통해 스타건축물보다 강력한 상생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자칫하면 예술기관을 지원하자는 내용으로 읽힐 수 있으나 그 반대다. 예술기관이 제공하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는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만들고 건강한 미술관 문화, 전시문화·파티문화 등 성숙한 문화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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