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팽창했던 한국 미술시장이 조정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미술계 최고 전문가들이 잇달아 관련 대중서를 출간해 주목을 끌고 있다.
6일 미술계와 출판계에 따르면 우정아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미술사 교수, 진휘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주연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 등 전문가들이 최근 현대미술에 관한 새 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이 팬데믹 이후 문화 향유에 대한 보복소비와 맞물려 3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며 ‘1조원 규모’로 커졌고, 부동산·금융자산에 이은 대체 투자처로 미술시장이 주목받으며 유동성 완화로 시중에 풀린 자금이 미술품으로 쏠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미술시장의 호황과 세계 양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Frieze)의 국내 첫 개최 등이 화제였던 올 7~8월에 출간된 미술관련 서적 대부분이 비(非) 전문가이거나 SNS 등에서 파급력이 큰 인플루언서들의 저서였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미술품 구입과 그림투자를 부추기던 호황기의 책들과 달리 최근 출판 서적들은 현대 미술의 근본을 되짚으며 기본부터 다시 다지게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각종 글로벌 경제 지표가 부정적으로 돌아서면서 미술시장도 ‘조정기’에 진입한 상황이라 차분하게 접근하는 ‘고수들의 책’이 미술향유의 저변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대미술은 ‘어렵다’고 여기는 독자들을 위해, 작품의 아이디어와 창작 과정에 초점을 맞춘 미술 경향인 ‘개념 미술’에 대해 우정아 교수가 되짚었다. ‘한국미술의 개념적 전환과 동시대성의 기원’(소명출판 펴냄)이라는 상당히 학구적인 제목이 붙었으나 실제 내용은 197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의 변천 과정을 이우환·박이소·안규철 등 대표 작가들의 사례로 이야기처럼 풀어 흥미를 더했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에 작품 이미지도 많아 쉽게 읽힌다.
진휘연 교수는 제1회 정점식미술상 수상자인 미술사학자 양은희 평론가와 함께 ‘현대미술 키워드1’(헥사곤 펴냄)을 출간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미술의 면모를 주요 키워드를 통해 정리했다. 대표 작가들을 설명하되, 작품 이미지는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진 교수는 “시각예술 관련 전공자들 뿐만 아니라 미술에 대한 이해 욕구가 뜨거운 독자들을 위해 집필한 책이라 앞으로 시리즈로 출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술을 알면 소유하고 싶기 마련이다. 주연화 교수의 ‘예술, 가지다’(학고재 펴냄)는 미술의 가치와 격변하는 미술시장, 갤러리와 아트페어의 역할부터 NFT아트의 명암까지 촘촘하게 살폈다. 아라리오갤러리 총괄 디렉터로, 상하이 분관을 이끌었던 저자의 현장 경험이 곳곳에 녹아있어 생생함을 더한다. 미술품을 수집하기로 결심했다면 롤모델이 필요하다. 아트컨설턴트 채민진씨의 책 ‘컬렉팅 듀오’(아르테카 펴냄)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떨치는 부부 컬렉터 22인의 현대미술 수집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술 서적 전문 출판사인 아르테카 측은 “미술품 수집이 상류층의 전유물에서 MZ세대가 열광하는 트렌디한 취미이자 재테크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미술품 수집에 진심인 이들을 위한 길잡이가 될 책”이라고 소개했다.
양정무 한예종 교수의 저서 ‘그림값의 비밀’(창비 펴냄)은 미술작품이 언제부터, 왜 비싸게 거래됐는지, 투자가치가 높은 작가를 알아보는 방법 등에 대한 정통 미술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은 “한동안 미술투자 열기에 편승했던 책들이 다수 선보였지만, 미술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면서 좀 더 차분하게 미술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때마침 출간된 전문가들의 책이 위축의 시기를 더 깊은 미술애호를 위한 준비 시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