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은 운이 좋습니다. 대표를 믿고 기다리면 다들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서울 강남역 인근 불법 다단계 업체 관계자)
“우리는 다른 허접한 업체와 다릅니다. 최신 기술을 이용해 원금을 보장해드립니다.”(서울 선릉역 인근 불법 다단계 업체 사무장)
대체불가토큰(NFT)·암호화폐·로봇 등 신기술을 앞세운 불법 다단계 사기가 활개를 치는 가운데 8일 서울경제 취재진이 찾은 서울 강남구 선릉역·강남역 인근 불법 다단계 업체 사무실에서는 사업설명회가 쉴 틈 없이 열리고 있었다. 매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 열리는 사업 설명회에 하루에도 수백 명의 투자자들이 오갔다. 심지어 불법 다단계 업체 10여 개가 한 빌딩에 모여 있기도 했다. 불법 다단계 업체 사무실 대로변과 골목길에서는 “투자는 하지 않아도 된다. 설명회만 들어보자”며 지인을 설득하는 60~70대 고령층이 쉽게 목격됐다. 이미 불법 다단계 사기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악에 받친 고성도 곳곳에서 들렸다.
불법 다단계 업체의 사업 설명회는 신규 투자자를 호명하며 박수를 유도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사업 설명을 위해 나선 업체 측 관계자는 ‘성공’과 ‘부자’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수익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투자자 대부분이 고령층인 것을 부각하며 자녀와 손자에게 ‘한턱’낼 수 있는 부모가 되자며 설득했다. 안정적인 자본금이 있어 손실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 불법 다단계 업체 관계자는 “부산 인근의 땅 4만 2000평이 온천으로 개발되며 4200억 원을 확보했고 다른 수익까지 합하면 총 1조 원가량의 자산이 있다”며 “원금을 잃는 경우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업체 측의 설명이 끝나자 사업 설명회를 찾은 투자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 대부분은 NFT·암호화폐·로봇 등 최신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며 피해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전문 기술 용어를 사용해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이 알 만한 내용을 함께 설명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사례를 제시하며 비상장 코인의 가격이 상장 후에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방식이다. 한 불법 다단계 업체에 5000만 원가량을 투자했다는 A 씨는 “들어만 봤지 NFT나 암호화폐가 정확히 뭔지 모른다”며 “업체 설명을 들어보니 자산도 충분하고 사업도 요즘 시대에 맞는 것 같아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불법 다단계 업체는 대부분 강남과 선릉 지역에 밀집해 있다. 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해당 지역에 있는 대기업과 금융 기업들의 신뢰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투자 피해자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 위치한 여러 다단계 업체를 방문하고 투자하면서 사실상 ‘다단계 산업단지’가 형성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불법 다단계 업체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A 씨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한곳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업체에 동시에 투자한다”며 “이전에는 영등포와 구로 등으로 다단계 업체가 나눠져 있었는데 수요에 맞게 자연스럽게 강남과 선릉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찰청에 따르면 강남·선릉역 일대를 담당하는 강남경찰서·서초경찰서·수서경찰서에 들어온 유사수신행위 사건은 2018년부터 2022년 10월까지 각각 616건·223건·471건이 발생하며 다른 지역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에서 발생한 유사수신행위 범죄 2007건의 65%에 달한다. 경찰청 통계로도 서울 대부분의 불법 다단계 업체가 해당 지역에 몰려 있는 것이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불법 다단계 업체 3곳이 입주해 있는 한 건물 관리자는 “강남역·선릉역·수서역 인근에는 불법 다단계 업자들로 가득 차 있다”며 “뻔히 보이는데도 경찰 수사가 왜 이뤄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선릉역 인근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는 “10년 전부터 강남·선릉 일대에 다단계 업체가 많은 것은 여전하다”며 “보통 6개월 주기로 새로운 업체가 들어오고 나가면서 한 탕씩 하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