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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의 그림]남산 중턱 하얏트호텔…공존을 그리며 자연을 그리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남산, 옛부터 '불의 기운' 지닌 火山으로 유명

30여년전 보일러 폭발사고 계기로 리노베이션

화마 막으려 계곡·폭포 풍경화로 벽면 휘감아

폭포수 떨어지는 자리엔 빛 그림이 어우러져

라운지 카페엔 흙·돌로 만든 상상 속 동물들

인간·자연 그리고 공존의 순환섭리 깃들여져

그랜드 하얏트 서울 1층 로비 전면 벽에는 캐나다 화가 마틴펑의 '폭포' 6점이걸려 있다.




서울 남산에 안긴 채 한강을 내려다보는 그랜드하얏트서울은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의 숨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천혜의 입지다. 소월길을 넘어가든 한남동이나 경리단길에서 올라가든 하얏트로 향하는 마음이 들뜨는 이유다. 그랜드하얏트서울의 로비에서는 계곡과 폭포를 그린 풍경화 6점이 방문객을 맞는다. 정문으로 들어서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 입구 쪽 벽면 전체를 일정한 간격으로 차지하고 있는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자연 속 호텔 안에 또 다른 자연이 펼쳐지는 광경이다. 워낙 작품이 큰 데다 대략 3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탓에 꼭 벽화처럼 느껴지는 그림들. 여기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랜드하얏트서울 정문 위쪽 벽에는 캐나다 화가 마틴 펑의 ‘폭포’ 연작이 걸려 있다.


1993년 7월 5일 새벽. 굉음과 함께 이곳 호텔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투숙객 600여 명이 잠옷 바람으로 대피하는 소동 때문만이 아니었다. 닷새 뒤로 방한이 예정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 일행이 그랜드하얏트서울을 숙소로 사용할 예정이었기에 호텔에 대한 관심이 유난했던 까닭이다. 사전 준비를 위해 미리 입국한 백악관 경호실 요원 등 100여 명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즉시 미군범죄수사대가 나섰고 폭탄 테러 가능성을 수사하기 위해 호텔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사흘 후 경찰은 노후한 8톤 규모의 스팀 보일러가 밸브 고장으로 폭발했다고 결론 냈다. 테러는 아니었지만 미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보안을 강조하던 정부는 무색하게 됐고, 클린턴의 숙소를 급작스럽게 바꾸는 통에 백악관 측은 당황했으며, 호텔도 크게 낙담했다.

그랜드하얏트서울 정문 쪽 벽에는 캐나다 화가 마틴 펑의 ‘폭포’ 연작이 걸려 있다.


세계 5대 호텔 체인 중 하나인 하얏트는 1978년 7월에 한국 내 첫 체인으로 그랜드하얏트서울을 개장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하얏트 호텔이다. 미국 브랜드라는 상징성에다 용산 미군 기지나 청와대와의 접근성이 좋고 산 중턱에 위치한 경호상의 유리함 때문에 1990년대 이후 방한한 미국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이곳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묵었다.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고(故) 다이애나비와 방한했을 때, 그의 부모인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가 한국에 왔을 때도 하얏트에 머물렀다.

자부심 높은 하얏트는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돌렸다.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의 계기로 삼았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겸 디자이너 존 모포드가 인테리어와 함께 미술 작품 선정까지 맡았다. 그는 스칼릿 조핸슨과 빌 머레이가 주연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의 배경으로 등장한 ‘파크하얏트도쿄’도 디자인한 실력파다. 모포드는 인테리어의 콘셉트를 정할 때 이름값보다는 분위기를 중시하고 소품과 풍수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랜드서울하얏트의 로비 벽면을 약 30년간 차지하고 있는 마틴 펑의 ‘폭포’(위쪽). 지난달 한국의 추상화가 하태임의 노란 색띠의 신작 ‘파사쥬’ 2점이 새롭게 걸렸다.


로비에 걸린 풍경화는 모포드의 선택이었다. 섬세한 표현력을 가진 홍콩계 캐나다 화가 마틴펑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남산이 불의 기운을 지닌 화산(火山)이라는 풍수를 고려해 불 기운을 다스릴 그림이길 바랐다. 그렇게 탄생한 폭포(Waterfalls) 연작은 벽 안에 각각의 동굴을 파 놓은 듯 고유한 공간감을 갖고 들뜨기 쉬운 호텔 로비를 평온함으로 감싼다.

지난달에는 로비의 리셉션데스크 양쪽에 새 작품이 들어왔다. 마틴펑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자리에, 폭포의 물결과 거의 비슷한 곡률의 선들이 바람의 움직임처럼 화면을 가르는 하태임의 ‘파사쥬(Passage·통로)’ 연작 2점이다. 벽면이 모두 검은색이라 자칫 작품도 어둑해 보일 수 있는 곳이나, 회색 바탕에 노란 선들을 얹은 작품은 스스로 빛을 뿜어내듯 밝게 빛난다. 따로 조명을 설치하지 않았으나, 한강이 내다보이는 맞은 편 통유리로 들어오는 자연의 빛을 머금어 그대로 발산한다.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인식하는 색깔이 노란색이고 원시시대에 동물의 뼈를 갈아 얻어내던 색도 노란색이었다고 해요.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찬란한 빛줄기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당한 색이 노랑이라 생각해서 ‘찬란한 기억’이라는 주제 아래 작업했습니다. 지난해 캐나다 옐로나이프 여행 중 만난 오로라를 모티브로 초록에서 분홍색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선보이던 것과 비교하면 노란 단색조 작업이 좀 과감한 변화죠.”

빛을 뿜어내는 듯한 하태임의 '파사쥬'.




하 작가는 쭉 뻗은 자신의 팔이 허락하는 최대치의 범위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선을 긋는다. 덧칠과 겹침은 수십 번씩 반복되고 지극히 온화한 곡선의 무리가 만들어진다. 지난 여름, 큰 창문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전시장에서의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작가는 이 ‘옐로우 시리즈’를 완성했는데 호텔과도 맞아 떨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의 물길이, 바람의 움직임처럼 이리저리 움직인 화가의 붓질과 절묘하게 공명한다.



그림 앞을 오가는 방문객의 움직임 속에서 물길과 붓질이, 숲과 빛이, 자연과 사람이 교차한다. 그 빛이 들어오는 쪽, 로비 안쪽은 라운지 카페 ‘갤러리’다. 소파에 앉아 벽인 줄 알고 기대는 곳곳에 작품이 하나씩 놓여 있다. 돌덩이 같으면서도 눈·코·입이 뚫려 동물 머리인 듯한 작품은 신상호의 ‘두상(Head)’이다. 양 옆으로 5개씩 총 10개다. 중간중간에 놓인 큰 거북 같은 덩어리 또한 그의 작품이다. 소·말·양·염소 그 무엇도 아니나 어찌 보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섞어 놓은 것 같은 상상 속 동물이다.

그랜드하얏트서울의 로비라운지 갤러리에 영구 전시돼 있는 신상호의 ‘두상’


로비 작품을 궁리하던 디자이너 모포드는 도예가 신상호를 찾아갔다. 요청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무색을 살린 인테리어와 ‘색상’ 면에서 조화로울 것, 또 하나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점이었다.

작가는 고심했다. 사업이 번창하고 재물운이 좋아진다는 황소상 등을 로비에 놓던 시절이었으나 그런 특정 동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운 움직임으로 가득한 호텔의 특수성을 담으면서도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작품이길 바랐다. 작가는 산의 원래 주인이었을 짐승들, 먼 고대로부터 인류와 함께 살아온 동물들을 상상하며 형태를 빚었다. 자연의 모습을 자연의 색으로 만들고 싶었다.

“한평생 흙으로 작업해 왔고 가장 자연스러운 색은 흙 그대로의 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약을 가공해 흙색처럼 보이게 하느니 차라리 흙을 발라보자 싶어 흙으로 빚은 작업 위에 다른 흙을 덧발라 완성했지요.”

마틴 펑의 유화 ‘폭포’를 지나 그랜드서울하얏트의 로비 라운지 카페 갤러리에 들어서면 신상호의 ‘두상’ 연작을 만날 수 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건만 한결같은 작품, 공간의 일부 같은 작업이 완성됐다. 지하 2층 바 헬리콘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작은 통로 겸 정원에도 신상호의 ‘두상’ 한 점이 있다. 휘어진 뿔이 왕관처럼 화려한 동물의 머리다. 때마침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게 바닥을 덮고 있어 흙색의 작품이 마치 땅에서 솟아난 나무둥치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원래 이 땅의 주인인 것처럼. 호텔 곳곳에서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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