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기업들이 사무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가 극심한 미국 고용 통계의 이면에는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한 해고와 일자리 질 저하가 뚜렷한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 시간) 올해 5월부터 11월 사이 링크드인에 올라온 채용 공고 중 계약직 수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6% 늘었다고 보도했다. 반면 정규직 채용 공고는 같은 기간 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링크드인은 통상 화이트칼라들이 경력 관리를 위해 주로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비정규직 채용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미국 내 정규직과 계약직은 해고 여부보다 고용 비용과 근무 형태 측면에서 더 큰 차이를 보인다. 정규직에게는 통상 건강보험과 유급휴가, 컴퓨터 등 장비가 제공되는 반면 프리랜서 등은 이 같은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에 인력 공급이 상대적으로 원활하고 임금이 높은 일반 행정이나 컨설팅 직군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전환이 활발하다. 인력 업체 LHH의 전문직 채용담당헤드인 크리스틴 캐스터네다는 “계약직이 과거에는 진입장벽이 낮은 직종에 많았지만 이제 점점 중간관리자나 숙련도가 필요한 직군에서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정리해고가 활발한 곳도 사무 직종이 많은 실리콘밸리와 월가다. 마이크론은 이날 반도체 수요 위축에 따라 내년에 전체 직원(약 4만 8000명)의 10%를 감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테슬라도 최근 일부 직원들에게 신규 채용 중단과 내년 1분기 중 감원 가능성을 예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골드만삭드도 내년에 4000명을 줄일 계획이다.
이에 사무직 근로자들은 일자리 유지를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인력 업체 인사이트글로벌이 최근 사무직군 100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 중간관리자의 75%가 해고를 피하기 위해 급여 삭감을 수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현장직 고용 시장과는 정반대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운송직이나 창고직 등의 경우 기업들이 면접도 생략한 채 채용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다만 감원 및 계약직 증가 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고용 시장 전반으로 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밀컨인스티튜트의 이코노미스트인 윌리엄 리는 “인력이 부족하고 비싼 시대에 기업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즈니스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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