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범죄 느와르 장르는 속도감이 생명 아니던가. 조금 지겨울 순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10초 앞으로' 버튼이 있다. 몇 번만 누르다 보면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극본/연출 강윤성)의 세계에 빠지기엔 충분하다.
차무식(최민식)이 시작부터 필리핀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체포된 것은 10점 만점에 10점. 하지만 이따금씩 70년대와 80년대 차무식의 유년 시절로 회귀하여 차무식과 주변 인물들 전사를 보여주는데 '10초 앞으로'를 자꾸 누르고 싶어진다. 그렇게 본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 눌러보다 보면, 현시점 '카지노의 전설' 차무식으로 돌아온 최민식의 연기에 서서히, 흠뻑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차무식은 시놉시스 설명대로 돈도 빽도 없다. 하지만 평범한 삶은 결코 아니었다. 교도소를 전전하는 '조폭' 출신 아빠(김뢰하)와 그에게 맞으면서도 옥바라지를 잇는 여린 엄마(배해선) 아래에서 파란만장한 과거를 살아내왔다.
'조폭' 아빠는 의외로 어린 무식에게 공부를 직접 가르치고, 고등학생이 된 무식(이규형)의 담임 선생(진선규)도 그에게 월급의 반을 쥐여주면서까지 대학 갈 것을 권한다. 무식은 성공을 위해 돈 벌 생각뿐이었지만, 그런 그가 뭐라고 담임 선생이 그 큰돈을 건넸는지. 눈물 삼키며 공부한 끝에 명문대 프리 패스할 만큼의 대입 학력고사 성적을 거둔다. 그만큼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는 인물이었던 거다.
하지만 바뀐 담임은 '네 주제에 무슨 명문대'냐며 집 근처 지방 국립대 정치외교학과로 보내버린다. 당연히 과 수석이었지만 공부는 일찌감치 손 놓고 돈이나 벌던 무식이었다. 그런데 극적인 계기로 '전대협' 의장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전형적인 피카레스크(picaresque)식 구성이다. 주인공은 악인이며 자신의 여러 과거를 고백하는 방법으로 극이 진행된다. 80원짜리 신문을 제값이 아닌 100원에 팔며 수완 좋게 돈을 벌던 유년 시절 고백부터 시작돼 성년의 차무식은 스스로 도박장을 열기도, 도박에 빠져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 그러다 중년에는 10년 묵은 '똥 채권'을 해결하는 무시무시한 사채업자로 실력을 인정받은 적도 있다.
성인이 된 차무식은 의외로 영어강사로 큰돈을 번다. 하지만 더 큰돈을 만져보려고 하우스 도박장을 연다. 수백억 원의 수입을 순식간에 올리지만 국세청 저승사자(류현경)가 딱 등장한다. 그녀는 사채업자보다도 더 무서운 부지런함으로 무식에게 거액의 추징금을 받아내려 한다. 무식은 그를 피해 필리핀으로 건너가게 되고. 그곳에서 정말 큰 돈이 오가는 '카지노' 사업에 눈을 뜬다.
무식의 캐릭터는 깊이감의 차원이 다르다. 파란만장 우여곡절을 겪어온 그의 곁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약자도 있고 강자도 있다. 악인도 있고 선인도 있다. 그들에게서 조금씩 영향을 받으며 자라온 그는 문득 악하기도, 문득 선하기도 하다. 강자에겐 강하게 들이받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수그리고 빌 줄도 안다. 그렇기에 무식은 현실에 가까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마냥 선하거나 마냥 악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보는 편이다.
다만 무식은 유년부터 많은 일을 겪어낸 덕분에 '깡'이 남다르다. 사채업자로서 돈을 받으러 다니며 눈 깜빡 안 하고 드라이버를 얼굴에 쑤셔넣는 무식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런가 하면 순진하게 여겨질 만큼 사람을 잘 믿기도 한다. 믿었던 고교 동창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면서는 오히려 친구의 험담을 전하는 젊은 친구를 호되게 혼내기도 한다. 이렇듯 입체적인 면모를 지닌 무식이기에 앞으로 그가 어떤 방향으로 극을 끌고 갈지 예측이 쉽게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최민식 배우가 무식을 연기한 게 신의 한 수처럼 여겨진다. 거기다 아직 '카지노'의 주요 인물인 오승훈(손석구)과 양정팔(이동휘) 그리고 서태석(허성태)는 등장하지도 않았다. 무식의 카지노 바 동업자로서 수백억 원 추징금을 대신 때려 맞고 징역을 살게 된 대망전자 사장 안치영(김민재)이 나중에 복수하러 등장할지도. 18세 미만 관람불가. 매주 수요일 1편씩 공개. 총 8부작. 시즌 2는 2월 15일 첫방.
◆시식평 : ‘너 나 감당할 수 있겠냐?’ 또 하나의 유행어 탄생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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