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시 신북면의 감자 캐릭터가 그려진 카페 ‘감자밭’ 앞. 개점하려면 아직 10분 넘게 남았다. 수은주는 영하 1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 상황. 자동차 몇 대가 시동을 켜놓은 채 주차돼 있었다. 오전 10시 문이 열리자마자 자동차 문도 함께 열렸고 동시에 카페 안에도 줄이 늘어섰다. 이들의 손에 들린 것은 한 가지. 요즘 가장 많이 찾는 간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판매 3년 만에 매출 200억 원을 넘어선 ‘감자빵’이다.
희대의 히트 상품을 만든 주인공은 30대의 젊은 부부로 청년 농부인 최동녘·이미소 농업회사법인 밭 공동대표다. 2일 카페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최 대표에게 비결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재치’였다. “감자빵을 감자와 똑같이 만든 것은 사는 사람을 웃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빵이 어떻게 감자와 똑같지’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재치를 부린 것이죠. 그게 고객들에게 통했던 것 같습니다.”
현실은 이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준다. 입소문만으로 마켓컬리와 백화점 입점에 성공했고 매출은 창업 원년인 2019년과 비교해 20배 이상, 1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감자 소비량도 연간 2000톤에 달한다. 감자의 새로운 소비처가 개발된 것이다.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청년 농부는 끊임없이 신제품을 쏟아냈다.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농업을 MZ세대의 시각에 맞게 재해석하자.’ 매일 2~3개씩 무려 200번의 시도를 거쳤고 결국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결과물을 얻었다. 감자빵은 단순히 감자 앙금을 넣은 빵이 아니다. 빵 하나에 최소 한 개 이상 감자가 들어간다. 내용물의 70%에 달한다. 빵의 탈을 쓴 감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양도 감자와 똑같다. ‘어떻게 이런 재미있는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신토불이'나 ‘우리 농산물이 좋아요’라고 하는 대신 MZ세대의 시각에서 감자를 재해석하고 소통한 것이 먹힌 것 같다”며 “실제로 우리의 주 고객들은 30대 서울 여성들”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도중 카페에 들어온 고객이 모두 20~30대였던 점이 우연은 아니었다.
감자를 선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각 지역에는 그곳을 상징하는 특산물이 있다. 나주는 배, 대구는 사과, 상주는 곶감 이런 식이다. 지금까지 강원도에는 이런 특산물이 없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특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 대표는 “감자는 강원도의 풍토와 문화를 담고 있는 키워드”라며 “여기에 콘텐츠를 입히면 충분히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감자에 MZ세대의 감성을 입힌 콘텐츠가 바로 감자빵의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최 대표의 목표는 빵을 파는 것이 아니다. 농업에 뜻을 두고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슬로건을 ‘농부가 꿈이 되는 회사’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소비 창출에 유난히 힘을 많이 들이는 것도, 감자 품종의 다양성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감자는 흰 감자가 대부분이다. 검은색 사과, 초록색 당근 등 다양한 품종을 선보이고 있는 다른 작물과는 대조적이다. 다양성의 부족은 농부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를 낳는다. 시장 위축과 출혈 경쟁이 그것이다. 그는 “플랫폼이 많아진다고 농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새로운 소비를 만들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고 감자빵은 이를 위한 가설이 검증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성공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시선은 더 먼 곳을 바라본다. 청년 농부가 볼 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에 인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지역에 일자리가 없는 것도, 청년 자살률이 높은 것도 따지고 보면 여기서 비롯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분명하다. 지방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면 된다. 최 대표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좁은 닭장 안에 수십 마리를 몰아넣었더니 털이 빠지고 죽기 시작하더군요. 너무 밀집해 살다 보니 생존 환경이 악화된 탓이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청년 실업, 자살과 같은 사회문제도 비슷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과밀이라면 분산시켜야죠. 그 지역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통한다면 청년들도 지방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농업으로 돈도 벌고 사회적 문제도 해결한다면 살 만한 세상이 올 것입니다. 제 진정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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