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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넘어뜨리고 히틀러 무릎꿇린…'악동' 카텔란이 왔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리움에서 국내 첫 개인전

미술시장 현실비판 등 대표작 38점 무료관람

논쟁적 소재로 관객과의 소통 추구

2011년 구겐하임 이후 최대 개인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동훈과 준호'는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정문 앞과 1층 로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진짜 사람은 아니다. /조상인기자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동훈과 준호'는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정문 앞과 1층 로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진짜 사람은 아니다. /조상인기자


리움미술관 정문 앞에 노숙자가 누워 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데 이 일을 어쩌나. 미술관 입장객들도 불편한 눈치다. 세상에, 로비 안쪽 기둥 앞에도 등 대고 앉은 노숙자가 있다. 이 사람들 여기서 왜 이러나. 보안요원은 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이것은 ‘현대미술계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63)식 인사법이다. 진짜 사람은 아니다. 나무·스티로폼·금속으로 만든 형태 위에 옷과 신발을 입힌 작품이다. 제목은 ‘동훈과 준호’. 카텔란이 미국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는 ‘미국식’ 노숙자를 제작해 야외에 두었는데, 지나던 경찰이 몸 녹이라며 차를 건넸다가 미동도 없고 숨도 쉬지 않는다며 911에 신고한 사연이 있다. 또 다른 대학미술관 전시 때는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며 집회 중이던 학생들이 시위 피켓을 노숙자 형태의 작품 손에 들려뒀다가 ‘정치적 해석’을 낳기도 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동훈과 준호'는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정문 앞과 1층 로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진짜 사람은 아니다. /조상인기자


용산구 한남동의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이 올해 첫 전시로 30일 언론에 공개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우리(WE)’의 첫 작품이다. 작가가 바란 것은 관객을 놀래키는 게 아니다. 관람자 제각각의 반응을 토대로 한 소통과 새로운 대화를 원한다. 누군가 노숙자에게 자신의 코트를 덮어준다면, 그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38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은퇴 선언을 했던’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 개인전이다.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31일 개막해 7월16일까지 개최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우리(WE)' 전경.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전시장 한복판에 축 늘어진 말 한마리(‘노베첸토’)가 매달려 있고, 바닥과 천장 쪽 창틀에 비둘기들(‘유령’)이 줄지어 앉아있어도 놀랄 일 아니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와 프랑수아 피노 구찌 회장의 피노컬렉션 전시에 선보인 대표작들이다. 7분마다 한 번씩 정적을 가르며 40초간 북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한다. 천장 쪽 난간, 비둘기 옆에 위태롭게 앉은 소년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속 오스카와 닮았다. 어른이 되길 거부한 채, 아이의 눈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카텔란의 자화상인 듯한 작품이다. 이 모든 것들이 조용하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현대미술의 역할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하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그(Him)'는 만행을 뉘우치지 않았던 아돌프 히틀러를 참회하는 형상으로 보여준다. /조상인기자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그(Him)'는 만행을 뉘우치지 않았던 아돌프 히틀러를 참회하는 형상으로 보여준다. /조상인기자


벽을 바라보며, 관객에게 등을 보인 ‘그(Him)’는 어린 아이같은 작은 체구이나 앞에서 본 콧수염이 아돌프 히틀러임을 알아채게 한다. 생전에 자신의 만행을 뉘우친 적 없는 히틀러를 작가는 평생 무릎꿇고 참회하게 했다. 카텔란의 블랙유머는 거침이 없다. 검은 화면을 성조기의 별 만큼이나 많은 총자국이 뒤덮었고, 그 맞은 편에는 경찰 2명이 거꾸로 서 있다. 무기력한 공권력에 대한 풍자다.

그 옆 대형 비석은 1999년 카텔란이 영국에서의 첫 개인전 때 제작한 작품이다. 영국이나 이탈리아나 축구에 죽고 못 사는 국민들이라는 점에 착안해, 지난 100여년 간 영국의 국가대표팀이 패배한 경기와 점수를 모조리 새겨 넣었다. 패전의 기록이 마치 참전용사 기림비처럼 보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을 맞고 쓰러진 모습을 극사실적 조각으로 만든 ‘아홉 번째 시간’도 충격적이다. 신성모독이라며 종교인과 정치인 등이 돌을 치우고, 교황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는 바로 그 작품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홉번째 시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을 맞고 쓰러진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조상인기자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메디언'은 값싼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여둔 것에 1억원 이상의 가격을 매긴 것이 논란을 일으킨데 이어 실제 이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가 있는가 하면 바나나를 먹어치우는 퍼포머가 등장하는 등 다양한 화제를 낳았다. 바나나가 갈변하면 3~4일에 한번씩 교체하는데, 작가는 테이프를 붙이는 각도까지도 엄격한 매뉴얼로 제시했다고 한다.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선보여 전 세계적 화제작이 된 바나나 작품 ‘코메디언’도 만날 수 있다. 근처 마트에서 바나나 한 개를 사서 테이프로 벽에 붙여둔 작품에 12만달러(약 1억4000만원)를 매겼는데, 실제로 판매가 됐다. 진짜 코메디는 한 퍼포머가 이 작품을 먹어버렸다는 사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바나나 작업으로 불리는 ‘코메디언’은 미술품의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고 갤러리는 어떻게 판매하며 작가는 어떻게 유명세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한 미술시장의 매커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라며 “조롱 같지만 그 조롱을 통해 미술계의 현실을 반성하게 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윈윈’한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갈변한 바나나를 사나흘에 한 번씩 교체할 때마다 작가 매뉴얼에서 지시한 테이프 각도까지 엄격하게 맞춰야 한다.

독학 예술가이자 문제아인 카텔란이 왜 ‘마르셀 뒤샹의 적자’이자 ‘앤디 워홀의 나쁜 친구들’이며 ‘요셉 보이스의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라 불리는지 유쾌한 전시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전시를 예약만 미리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7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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