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금강산은 풍류가객의 필수 유람 코스였다. 안동 김씨 집안의 김창흡은 열 세번이나 금강산을 다녀왔을 정도였는데, 절경을 한 번만 보고 오기 아쉬워 겸재 정선(1676~1759)을 동행해 그림으로 남기게 했다. 세 번이나 금강산을 다녀온 겸재는 국보 ‘금강전도’를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풍악도첩’(국립중앙박물관), ‘해악전신첩’(간송미술관) 등의 금강산 화첩을 남겼다.
알 수 없는 경로로 일본으로 간 겸재 정선의 ‘금강산팔경도’가 병풍이 되어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오른다. 글로벌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3월 21일 뉴욕에서 진행되는 한국 고미술품 경매에서 한국 미술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앞서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 동안 종로구 팔찬동 크리스티 코리아에서는 주요 출품작인 정선의 ‘금강산팔경도’와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 등 10점의 프리뷰(사전 공개) 전시가 진행된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가 그린 금강산 풍경 8점은 일본 규슈의 한 개인이 소장하던 작품으로 경매에는 처음 소개됐다.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환수해 올 기회이기도 하다. 그림을 위·아래로 2점씩, 총 8점을 4폭 병풍으로 표구한 점이 독특하다. 추정가는 15만~20만 달러(약 2억~2억5000만원)이다.
이번 뉴욕 경매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높이 45㎝가 넘는 초대형 18세기 백자 달항아리다. 일본 개인이 소장하던 작품이다. 수려한 모양에 우윳빛 나는 유백색이 특징이며,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달항아리보다 크면서도 보수된 적 없는 상태라 희소성이 높다. 추정가는 100만~200만 달러(약 12억~25억원)다. 크리스티 측 관계자는 “최근 10년간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며 “백자는 18세기 유교 사상을 반영해 조선 시대 전형적인 미학을 나타내며, 수 세대에 걸쳐 현재까지도 수집가의 선호도가 높고 기관들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중국·일본 등 세계 도자기 역사 어디에도 없는 한국 고유의 도자 형태다. 대형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선 도자 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대영박물관, 샌프란시스코 동양미술관,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등 여러 기관이 소장하고 있다.
61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박수근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1962년 작 ‘앉아있는 세 여인’이다. 추정가는 40만~60만 달러(약 5억~7억5000만원)이다. 국내 전문가와 연구자들에게도 소개된 적 없는 미공개작이다. 유럽의 소장가는 UN소속으로 파견된 의사였던 부모님이 1962년 한국에서 구매한 작품을 오랫동안 집안에서 소장하다 물려받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조선의 청화백자와 고려시대 청자 등을 만날 수 있다. 백자청화 수화문 각병(이하 추정가 8만~12만달러)은 팔각의 몸통에 원형 굽이 있는데, 몸통 네 곳에 원을 그려 패랭이꽃, 소나무와 학, 국화, 매화를 푸른 안료로 그려넣었다. 17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조선 문화 연구자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저서에도 실린 의미있는 도자다.
새끼줄같은 꼬임 장식을 각 모서리에 넣은 19세기 백자청화 승문 육각병(7만~9만 달러), 긴 목이 우아한 청자 몸통에 앵무와 버드나무를 새긴 고려시대 청자음각 유조문 정병(8만~12만 달러)도 출품됐다. 겸재의 산수도(3만~4만달러), 15~16세기 백자 소문 호(5만~7만 달러), 18세기 백자청화 산수문 병(6만~7만 달러)도 외국인 소장가에 의해 경매에 오른다. 특별히 이번 뉴욕 경매에서는 조선의 달항아리와 함께 현대미술가 고영훈이 그린 ‘달2020’이 함께 선보여 달항아리의 역사와 현재를 함께 보여줄 예정이다.
한편 크리스티는 3월 21일 한국과 일본미술 경매를 시작으로 한 주간 아시아 미술을 집중적으로 경매에 올린다. 한국 고미술 경매 다음 날인 22일에는 ‘남부 아시아 근·현대 미술’ 및 ‘인도, 히말라야와 동남아 미술’ 경매가, 23일에는 40년 가까이 중국고미술 전문으로 활동한 J.J 랠리(Lally) 소장품 경매가 열린다. 이후 24일까지 이틀에 걸쳐 ‘주요 중국 도자기와 미술품’ 경매가 이어져 아시아위크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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