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사용했음을 입증하는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이 약 50년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와 대중 앞에 전시된다. 다만,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다. ‘직지’는 약탈 등 불법 반출이 아닌 정상 거래를 통해 프랑스로 넘어갔고, 정식 절차를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한국의 문화유산임이 분명하지만 안타깝게도 먼 발치에서 지켜봐야 하는 대표적인 국외소재 문화재 중 하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오는 4월 12일(현지시간)부터 7월 16일까지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을 주제로 한 전시에 ‘직지’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최근 누리집을 통해 알렸다. 박물관의 소개 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인쇄술의 발전 역사와 성공의 열쇠를 추적”하기 위해 기획됐고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인 직지(한국, 1377년)”를 선보인다. 이로써 직지는 1973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동양의 보물’ 전시 이후 반 세기 만에 실물이 일반에 공개된다.
직지의 정확한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조계종과 청주고인쇄박물관 등에 따르면 직지는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고려 우왕 3년(1377)에 금속활자로 간행됐다. 상·하 2권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직지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초대 공사를 지낸 콜랭 드 플랑시(1853~1922)가 한국에 머무르던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 국내에서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130여 년 전 프랑스로 건너간 직지는 이후 고미술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1854∼1943)의 손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된 것으로 전한다.
1900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을 뿐 이후로도 ‘직지’의 존재와 가치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결정적 계기는 1972년 ‘세계 도서의 해’ 기념 전시였다.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고(故) 박병선(1923∼2011) 박사가 “직지는 1455년에 나온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전 세계에 알렸다.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알려 한국으로 돌아오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직지’는 우리 인쇄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그간 국내 다수의 박물관이 직지를 빌려와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 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불경을 기록했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성서를 적었다는 점에서 종교와 기술 등 문화사 전반을 아우르는 의미있는 전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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