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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면 저렇게 돼"…입주민 '갑질'에 우는 경비원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70대 경비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지기 전 동료 경비원에게 보낸 유서에는 ‘관리소장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내용이 담겼다.연합뉴스TV 캡처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주일 사이 잇따라 사망한 경비원과 청소미화원이 사망 직전 관리업체로부터 퇴직 압박이나 해고 통보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가운데 아파트 노동자의 ‘갑질 피해’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1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를 공개하고 아파트 등 공동주택 노동자들이 입주민 용역회사의 갑질에 노출돼있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에는 이 단체가 지난해 10월 경비노동자 5명, 청소노동자 1명, 관리소장 1명, 관리사무소 기전 직원 2명 등 총 9명을 심층 면접해 정리한 갑질 피해 실태가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9명 전원이 입주민으로부터 △고성·모욕·외모 멸시, △천한 업무라는 폄훼를 경험했고, 용역회사의 △부당한 업무지시·간섭 등 갑질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경비노동자들이 이 같은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기간’을 꼽았다.

법 테두리 밖에 있는 ‘원청 갑질’


공동주택 노동자 9명 중 6명은 지난 14일 극단적 선택을 한 강남 아파트의 70대 경비원과 마찬가지로 업무 외 부당한 지시를 수행하는 등 ‘원청 갑질’을 당했다.

경비원 A씨는 “관리소장 지시로 갑자기 정화조 청소를 했다. 분뇨가 발목까지 차올랐지만 그 당시에는 분뇨인 줄도 모르고 1시간 넘게 작업했다”며 “밖으로 나와서야 분뇨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 독이 올라 2주 넘게 약을 발랐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런 부당한 업무 지시 등 괴롭힘을 당해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이 제도는 원·하청 회사 간 근로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숨진 강남 아파트 경비원이 갑질 가해자로 지목한 관리소장은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아파트 관리를 위탁받은 용역업체 소속이고, 그는 이 업체가 경비 업무를 위탁한 경비업체 소속이었다. 즉 이 경비원은 관리소장과 같은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공부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입주민에게 해고 협박을 받은 노동자는 9명 중 4명에 달했다.

일부는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채용했냐, 당장 바꾸라”, “(경비초소에 불을 켜놓은 것을 두고) 너의 집이었으면 불을 켜놓을 거냐”는 등 폭언에 시달렸다.

입주민과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해고 종용을 당하거나 근무지가 변경되는 경우도 있었다. 경비원 B씨는 “입주민에게 차를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경비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며 관리사무소에 얘기해서 그만두게 하겠다고 협박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입주민이 자녀에게 ‘공부 잘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비하하는 발언을 들었다는 경비원도 있었다.

‘초단기계약’ 아파트 경비원, 고용불안 시달려


대다수 경비 노동자는 간접고용과 함께 초단기 근로계약이라는 덫에 옭아매여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발행한 ‘공동주택 경비근로자 업무범위 명확화의 고용 영향 분석’에 따르면, 전국 경비 노동자들의 간접고용 비율은 9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 응답자(3150명) 중 94%는 1년 이하 단기 계약을 맺고 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 조사 대상 노동자 9명 모두 1년 미만의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는 고용 형태였다. 그런데 경비 노동자 5명의 계약기간은 이보다 더 짧았다. 이중 4명은 3개월 단위, 1명은 1개월 단위로 계약을 체결했다.

단체는 보고서에서 “(사망한 강남 아파트) 경비원은 계약 해지를 당할 수 있다는 극심한 고용불안 때문에 갑질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단체는 관련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입주자 대표 회의의 책임 강화 △갑질하는 입주민 제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 확대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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