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8일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첫 회의에서 지난 15년(2006~2021년) 동안 280조 원을 쏟아붓고도 저출산 극복에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관계 부처 장관들에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기존의 저출산 정책을 철저히 평가하고 실패한 정책은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더 이상 재정을 불필요하게 쓰지 않고 국민이 원하는 실효적인 대책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선정된 5대 핵심 과제가 △일·육아 병행 환경 마련 △돌봄·교육 확대 △주거 서비스 확충 △양육비 경감 △부모·아이 건강 지원이다. 여성이 결혼을 꺼리는 주된 이유인 비용 부담(24.6%), 일·육아의 병행 어려움(23.4%) 등을 반영한 결과다. 그중 윤 대통령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즐거움과 자아실현의 목표가 동시에 만족되도록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고 보장한다는 목표하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일과 육아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도록 일하면서 아이도 직접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저고위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우선 육아기근로시간단축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자녀의 연령을 현행 만 8세에서 만 12세로 상향 조정하고 제도 활용 기간을 최대 24개월에서 36개월로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삭감되는 임금의 100%를 지원해주는 시간 단위도 하루 1시간에서 2시간으로 확대했다.
육아기재택근무제를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해 정부가 제도 활용 기업을 적극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도록 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보 공시에 이 같은 유연근무제 사용 지표를 추가해 기업의 참여를 유인하기로 했다.
2027년까지 신혼부부에게 주택 43만 가구를 공급한다. 특히 공공분양 시 다자녀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변경해 혜택 대상을 늘리기로 했다. 아이만 있다면 법적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공공주택 분양·입주 시 똑같은 혜택을 주기로 한 점도 주목된다. 이는 윤 대통령이 저출산에 맞서 발상의 전환을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양육비 부담을 덜기 위한 세제 지원도 이뤄진다. 이와 관련해 저소득 가구의 양육을 지원하는 자녀장려금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현재는 부부 합산 소득이 4000만 원 미만인 가구에 자녀 1인당 최대 80만 원을 지급하는데 소득 기준과 지원 액수를 늘리는 것이다. 이외에도 기업이 근로자에 출산·양육 지원금을 줄 경우 이를 경비로 인정해 세제 지원을 늘리는 방안 역시 추진된다.
예산 당국도 적극적이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초저출산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내년도 예산 편성 시 그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라며 “결혼과 임신·출산·육아 등 전 주기에 걸친 재정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 현재 기준중위소득 180% 이하 가구에만 지원되는 난임 시술비를 모든 가구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결혼 연령이 늦어져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가 많아지는 현실을 고려했다”며 “소득 기준에 상관없이 난임 시술을 지원하는 경상남도의 경우 난임 부부의 임신 성공률이 26%에 달하는 등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발표된 내용을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해 상반기부터 공개할 계획이다. 또 대통령이 주재하는 저고위 본회의를 상시 개최해 대통령이 직접 정책 수립과 집행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홍석철 저고위 상임위원은 “대부분의 출산 대책에 대한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 협조가 필수”라며 “긴밀한 당정 공조를 통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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