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항만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연례 협의체를 신설한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확대를 위해 아태 지역과 전략적 협업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해외 항만 시장 공략 차원에서 동남아 연합체인 ‘메콩강위원회(MRC)’ 등 역내 지역 기구와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10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다음 달 말 태국 방콕에서 ‘제1회 아태 지역 지속가능한 해상연계성 포럼’을 개최한다. 매년 한 번씩 포럼을 개최해 아태 지역 국가들의 해운·항만 정책을 공유하고 협력 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목표다. 해수부는 최근 아태 지역 내 유일한 정부 간 기구인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62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포럼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각국 고위 관계자의 참여 여부를 조율 중”이라며 “국제기구나 유관 기관도 초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아태 해상포럼을 신설하는 것은 역내 회원국 간 협력 의제를 주도하기 위해서다. 세계 최대 항만 시장으로 꼽히는 아태 지역 국가들과 협력 사업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지난해 말 ESCAP 7차 교통위원회에 아태 지역 해운·항만 분야 워킹그룹 구성을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가 아태 해상포럼을 연례화하려는 것도 워킹그룹 출범 전까지 역내 해운·항만 협력의 구심점 역할을 할 협의체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공략 대상인 아태 지역 항만 시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성장세가 두드러진 곳은 아시아 역내 항로인 ‘인트라아시아’ 항로다. 글로벌 기업들의 주요 생산 기지가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 집중된 영향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인트라아시아 항로 물동량은 지난해 6740만 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에서 내년 7470만 TEU로 1000만 TEU 가까이 늘어난다. 내년 전체 항로 물동량 예상치(2억 2360만 TEU)의 약 33%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는 ESCAP 외에도 다양한 아태 지역 기구의 포럼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태국·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국 4개국이 모여 설립한 메콩강위원회가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 메콩강 수로 개발 사업 활성화를 위해 전문 인력 교육 및 훈련을 지원하는 등 포럼 외의 협력 방안도 거론된다.
이번 포럼을 기점으로 정부의 항만 산업 육성 전략이 추진력을 얻을지 주목된다. 앞서 정부는 올 초 ‘스마트항만 기술산업 육성 및 시장 확대 전략’을 통해 현재 2.4% 수준인 국내 기업의 글로벌 항만 기술 산업 점유율을 2031년 1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구상을 내놓았다. 시장조사 기관인 비즈윗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글로벌 스마트 항만 시장의 규모는 29억 6000만 달러(약 3조 9000억 원)로 2029년까지 연평균 32.4%씩 성장한다. 정부 목표치대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면 향후 부가가치가 수조 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 정부가 협력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성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항만 물동량 증가율이 높지 않은 만큼 주요 항만국 간 ‘제로섬’ 경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교수는 “최근 급부상 중인 말레이시아항은 싱가포르항 물동량을 끌어와 성장했다”며 “전 세계 주요 항만 80~90%가 아태 지역에 있어 협력의 필요성은 크지만 결국 경쟁 관계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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