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를 태운 할머니의 차량이 급발진 의심사고를 낸 일이 또 발생했다. 할머니는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가족들은 운전자가 직접 자동차 이상을 입증해야 보상받을 수 있는 현실에 좌절했다.
지난 13일 전파를 탄 JTBC ‘한블리(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는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도로에서 할머니와 손녀의 급발진 사고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당시 할머니는 12살 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영상을 보면 사고가 나기 직전 두 사람이 탄 차는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할머니 사위에 따르면 당시 할머니는 사고 5~10분 전부터 차의 이상을 감지했다고 한다. 앞 차량과 거리가 계속 벌어지자 할머니는 “아니, 차가 왜 이러지”라고 말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손녀가 “왜?”라고 묻자 “아니, 밟아도 차가 잘 안 나가”라고 했다.
그 순간 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했고 신호를 받고 멈춰 서있던 차와 그대로 충돌했다. 액셀을 밟아도 잘 나가지 않던 차가 갑자기 앞차를 들이받고 뒤집힌 것이다.
할머니는 본능적으로 조수석의 손녀를 보호하기 위해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다행히 손녀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척추에 나사를 3개나 박는 큰 수술을 받았으며 차는 크게 망가져 폐차 처리를 해야 했다.
사위는 “차들이 서있어서 멈추려던 상황인데 거기서 풀 액셀 밟았을 리가 없다. 만약 액셀을 밟았다고 해도 소리가 ‘위잉’ 하면서 그렇게 굉음이 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경찰 조사는 안 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급발진 이유를 밝혀내는 동안 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가족은 결국 급발진 이유를 밝힐 방법이 없어 포기하고 그냥 보험처리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 변호사는 “현재 법은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운전자가 증명해야 한다”며 “한블리에서도 법을 바꿔야 한다고 여러 번 지적했더니 법안이 만들어졌다. 개정안이 발의가 됐고 위원회 심사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 급발진 사고 관련 방송에서도 한 변호사는 “입증 책임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국회의원 분들, 이번에 이 법 제대로 바꿔서 만들어주길 기원하겠다”며 “급발진 의심 사고, 이런 단어를 우리 기억에서 지울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고 한 바 있다.
한편 지난해 12월 강릉에서도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로 당시 12살이던 손자 고(故) 이도현군를 잃은 68세 할머니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형사 입건되는 일이 일어났다.
도현군의 유족은 급발진 사고를 의심하며,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을 묻기 위한 민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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