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3329명. 3월 말 기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은 전체 임차인의 숫자다. 이 기간 동안 이들이 돌려받은 금액도 2조 8033억 원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과 이들의 재산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덕분에 보호받았다고 생각하면 보증의 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극찬하기에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전세 임차인은 HUG로부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지급 거부 통보를 받고 온갖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HUG가 계약 기간 중 임대인이 변경되고 임차인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계약 종료를 통보했을 경우, 임대인의 신분증 사진 등을 문자 메시지로 받아 제출해야만 보증 이행 대상이 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임대인을 오랜 시간 설득한 끝에 겨우 신분증 사진을 받아 내기는 했지만 그는 보증금이 입금되기 전까지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공기업인 HUG가 해야 할 일을 임차인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된 뒤 HUG는 “잘못된 증빙을 바탕으로 대위변제를 진행하면 추후 채권 회수가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정해진 확인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며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다. HUG가 자체적으로 임대인을 확인할 권한이 없기에 증빙을 임차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대위변제의 진행 주체인 HUG가 정작 그와 관련된 자료를 열람하거나 조회할 권한은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풀이된다.
HUG 덕분에 많은 이들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을 보증금을 지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HUG도 채권 회수를 위해 각종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임차인처럼 ‘특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분노와 불안의 나날을 보낸 뒤에야 겨우 보증금을 받는 일이 없도록 좀 더 임차인 중심의 세심한 제도 설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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