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의 기억을 하나씩 지우는 알츠하이머 환자는 세계적으로 약 5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65세 이상 인구 9명 중 1명에 해당할 정도로 많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치료와 돌봄을 위한 의료 비용과 각종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6월 수상자인 김찬혁(47·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환자의 면역 체계를 이용한 새로운 기전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연구개발(R&D)한 공을 인정받았다. 난치성 뇌 질환 치료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항암제에서 큰 기대를 받고 있는 면역 치료제의 개념을 알츠하이머병에 도입한 것이다. 현재 그의 연구는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한 임상 시험 준비 단계에 있다.
치매의 가장 큰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은 뇌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발생한 베타 아밀로이드 펩타이드의 이상 축적과 타우 단백질의 엉킴으로 발생한다. 시냅스 손상과 세포 독성을 일으키고 신경세포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지만 면역반응을 통해 병원균을 제거하는 항체의 특성으로 인해 뇌 안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해 인지 기능 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교수 연구팀은 몸속 세포가 끊임없이 사멸하고 생성되는 과정에서 죽은 세포들을 제거하는 포식 작용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연구팀은 포식 작용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Gas6을 인위적으로 변형시켜 Gas6이 죽은 세포 대신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를 개발했다. 실험 결과 재조합된 단백질(anti-Abeta-Gas6)은 염증 반응 없이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했고 염증 반응과 뇌 신경세포 사멸 같은 부작용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질병 생쥐 모델 실험을 통해 재조합된 단백질이 염증 반응 없이 뇌 속에 축적된 베타 아밀로이드의 양을 현저하게 줄이는 것을 관찰했다. 이들 생쥐 모델은 항체 치료제를 투여하자 손상된 인지능력과 기억력이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회복됐다. 김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뇌의 염증 작용 없이 베타 아밀로이드 침전물(plaque)을 제거하는 새로운 기전의 단백질 치료제는 ㈜일리미스 테라퓨틱스에 기술이전돼 바이오 신약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 교수가 2016년 KAIST 부임 이후 꾸준히 연구해온 항암 면역 세포 치료제는 ㈜큐로셀에 기술이전돼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환자의 면역 체계를 조절해 질병을 치료하는 면역 치료는 지난 10년간 항암 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치료 분야로 자리매김했다”며 “앞으로 10년은 이 같은 연구가 퇴행성 뇌 질환 치료에까지 확대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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