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19 유행이 지나가고 해외여행족들이 급증했습니다. 휴가로 며칠간 사무실을 비웠다가 출근한 동료가 여행지에서 사온 과자를 나눠먹으며 여행 에피소드를 듣다 보면 새삼 엔데믹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해외여행을 쉬었던 걸까요? 주위를 둘러보면 장거리 여행 중 시차적응을 하지 못해 애를 먹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의학적으로는 장거리 항공여행 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집중력, 판단력이 저하되고 불면증·초조함·두통·복통·근육통·현기증·소화불량 등의 증상을 경험할 때 ‘시차증후군(jet lag)’이라고 부릅니다. 평소 신체가 인식하고 있던 시간과 여행지 시간 사이의 부조화로 인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낮밤이 바뀌고 시차의 변화가 많은 곳으로 여행을 할수록 적응이 더 어려워지는데 일반적으로 동쪽으로 여행할 때 시차 증세가 심하다고 합니다. 한국 기준으로는 서쪽으로 이동하는 유럽보다 동쪽으로 이동하는 미국·캐나다·하와이 등 북미 지역을 여행할 때 시차 적응이 더 어렵다는 얘기죠.
시차증후군의 가장 좋은 약은 ‘시간’입니다. 이론상 1시간 차이에 적응하려면 대략 하루가 필요하다고 해요.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하면 너무 무책임하죠? 7시간 차이가 나는 독일을 예로 들면 일주일 뒤에나 시차장애가 사라진다는 건데 모처럼만의 휴가로 하루가 아쉬운 마당에 며칠씩 시차적응에 시간을 쏟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물론 해외 원정경기가 있는 운동선수나 중요한 계약, 회의 참석을 위해 출장을 떠나는 직장인이라면 컨디션 관리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할테고요.
이처럼 업무상 출장이 잦거나 유독 시차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분들이라면 출국 전 멜라토닌을 처방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개인차는 있지만 자기 전 멜라토닌을 한알씩 먹으면 시차로 인한 피로를 예방하는 데 제법 효과적이거든요.
멜라토닌이 시차적응을 돕는 비밀은 햇빛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해가 일찍 뜨는 여름에는 겨울보다 한결 아침에 일어나기 수월하다고 느껴지죠? 햇빛은 아침에 기상할 때 체내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을 떨어뜨려 주고 야간에는 멜라토닌을 분출해 편히 잠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처럼 멜라토닌이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약국이나 편의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죠. 대부분 현지에 도착한 첫날 저녁 8~9시경 1번만 먹으면 시차적응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일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간혹 해외에서 멜라토닌을 구입해 오는 분들도 있는데 이 경우 구입제품에 함유된 멜라토닌의 양을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멜라토닌 3㎎ 정제가 시차증후군 용도로 허가를 받았는데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취침시간에 맞춰 한 번에 1알 또는 2알을 복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중독 위험은 없다고 알려졌지만 단기간 가장 낮은 용량을 복용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해요. 처음부터 2알을 먹기보단 1알로 시작해서 효과가 충분하지 않을 때 2알로 늘리돼 최대 5일까지만 복용하도록 권장됩니다.
물론 약에 의존하기 보단 출발 전후 여행지 시간에 맞춰 적응훈련을 하거나 비행 중 도착장소의 현지시간에 맞춰 지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멜라토닌의 작용원리를 응용한다면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오전에 30분 이상 햇빛을 쬐는 야외 스케줄을 잡는 것도 숙면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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