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相象(상상)’은 이웃나라 일본의 다양한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한국과 닮은 사회적 현상·맥락을 짚어보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대낮 오사카 공항열차 안에서 3명 찔러…인파 붐비는 역서 범행
‘신림동 칼부림’ 피의자 조모(33)씨가 구속된 가운데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대낮 오사카 공항열차 안에서 한 3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3명이 부상한 것이다.
교돝통신·NHK방송·ANN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23일 오전 교바시를 출발해 간사이공항으로 향하던 JR선 열차 내에서 남성 3명이 잇달아 칼에 찔려 다쳤다. 이들은 각각 24세 차장 한 명과 79세·23세 승객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오사카 이즈미사노시의 JR 간사이공항선 린쿠타운역 역무원이 "칼에 얼굴을 찔려 다친 사람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용의자는 역 승강장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체포된 용의자는 주소와 직업이 불분명한 시미즈 카즈야(37)로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 남성 피해자와 다툼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지목된 20대 피해자는 “혼자 동영상을 보면서 앉아 있었다. 피의자와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의자는 체포 당시 칼 3개를 소지 중이었다. 그는 흉기를 휘두르기 전 차량 내부를 돌아다니며 다른 승객들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고 들고 있던 가방으로 찌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시미즈는 20대 승객에게 시비를 걸다가 갑자기 피해자의 목을 찔렀다. 이어 차장이 이를 제지하려 몸싸움을 벌이다 부상을 당했다.
70대 피해자는 “(피의자와 같은 칸의) 승객들이 도망가길래 자세히 살펴봤더니 피투성이가 된차장이 승객들에게 ‘위험하니 접근하지 말라’고 말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경찰은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린쿠타운역은 일본 제3의 공항인 간사이공항에서 한 정거장 거리이고 대형 쇼핑몰이 밀집돼 평소 많은 인파가 붐비는 곳이다. 근처 상점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다고 한다. JR서일본에 따르면 4량 편성인 이 열차에는 약 150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JR 간사이공항선은 한때 운행이 잠시 중단됐다가 2시간여 뒤인 오전 11시45분부터 재개됐다.
한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칼을 든 피의자가 경찰과 대치하다가 바닥에 주저앉는 영상이 퍼지고 있다.
“성공한 여성 죽이고 싶었다"던 37세男 1심서 ‘징역 19년’
앞서 이달 초 도쿄지방법원은 2021년 8월 6일 오후 8시30분께 도쿄 세타가야 구간 오다큐선 급행열차에 불을 지르고 3명을 흉기로 찌른 37세 쓰시마 유스케에게 징역 19년을 선고했다.
‘성공한 여성을 죽이고 싶었다’던 그는 20대 여성의 등과 가슴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또 다른 승객 2명의 배를 찔러 살해하려고 한 혐의를 받는다. 이로 인해 20대 여성은 전치 3개월의 중상을 입었고 나머지 승객 2명은 전치 1~2주의 부상을 당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승객들도 다쳤다.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쓰시마는 긴급 정차한 전철에서 내려 선로를 따라 도주했다가 약 1시간 30분 후인 오후 10시께 사고 현장에서 6㎞가량 떨어진 편의점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편의점 점장에게 “지금 뉴스에 나오는 사건의 범인이다. 도주하기에 지쳤다”라며 경찰에 신고하도록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쓰시마는 경찰 조사에서 “성공하거나 행복한 여성을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지금까지 만났던 여성들 모두 나를 깔봤다. 6년 전부터 행복한 여성을 죽이고 싶었다"라며 "나 혼자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사람을 많이 죽이고 싶었다. 도망칠 곳이 없는 지하철 안이라면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도 말했다.
사건 발생 몇 시간 전 한 식품 매장에서 도둑질하다 적발돼 경찰 조사를 받은 쓰시마는 신고한 점원이 여성이었다는 이유로 여성을 죽이고 싶다는 동기를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여친 헤어지고 실의 빠진 26세男…사형 받으려 무차별 범죄
이 사건은 또 다른 범죄로 이어졌다. 같은 해 11월 핼러윈 데이에 도쿄 지하철 게이오선 열차 안이었다. 26세 핫토리 교타는 조커 복장을 한 채 흉기로 1명을 찌르고 열차에 방화를 저질렀다. 오다큐선의 사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핫토리의 결심공판이 지난 21일 열렸다.
재판에서는 피고의 방화가 승객 12명에 대한 살인미수죄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핫토리 측 변호인단은 “살인의 고의가 없어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징역 12년 정도가 적당하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반면 25년형을 구형한 검찰은 “피고는 헤어진 연인의 결혼으로 실의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가 실패했다”며 “사형을 언도받으려고 자신과 무관한 승객들을 끌어들였다. 인명을 경시한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판결은 오는 31일 예정이다.
대검찰청 ‘묻지마 범죄’ 가중처벌 원칙 있지만…'심신미약'이 감형 요소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 사건’에 이어 ‘묻지마 범죄’가 잇달아 일언나자 일각에서는 묻지마 범죄의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묻지마 범죄 특성상 처벌 강화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대검찰청이 2017년 만든 ‘폭력범죄 엄정 대처를 위한 사건처리기준 강화 방안’에는 묻지마 범죄와 관련해 일반 범죄와 달리 초범이라도 가중처벌하고 동종전과나 피해자와 합의 여부도 따지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노인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범행을 가한 경우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묻지마 범죄의 가중처벌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법적 개념과 별도의 통계가 없고 재판에서도 피고인의 범행 동기와 죄질의 정도, 합의 여부 등이 양형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중 정신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아 ‘심신미약’이 결정적인 감형요소로 작용했다. 지난해 7월 제주 서귀포시의 한 노상에서 술을 마시던 A씨가 근처를 지나던 50대 여성에게 “죽어라”라고 소리쳤다. 그는 여성과 일면식도 없었지만 돌연 주먹을 휘둘렀고 여성이 쓰러진 뒤에도 무차별 폭행이 이어져 뇌진탕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혔다. 이어 이를 제지하던 40대 남성에게도 상해를 가했다.
올해 1월 1심 법원은 A씨에게 “이런 ‘묻지마 범죄’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범행에 대처하기도 어려워 사회적으로 큰 불안감을 야기한다”며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도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만취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이나 피고인이 반성하고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
또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울 중랑구 일대에서 10대와 20대, 60대를 각각 묻지마 폭행해 갈비뼈 골절 등 상해를 입힌 B씨도 올해 3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B씨의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수사보고에 기재된 대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치료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심신미약 판단으로 형량이 엇갈린 적도 있다. 2021년 강릉에서 날카로운 물건으로 상대를 마구 찔러 살해하려 한 C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정신병력이 있고 치료를 받은 사실은 있지만 범행 당시엔 일상생활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면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이 성경, 사탄, 악귀 등을 거론하며 이상증세를 보였던 점을 근거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보고 징역 4년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 강력한 형사처벌도 분명 필요하겠지만 정신질환 치료가 더 시급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신림동 칼부림’ 조씨, 정유정과 심리 상태 유사” 주목
전문가들은 조씨와 정씨의 심리 상태가 유사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승재현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조씨는 정씨와 동일하게) 또래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가 쌓여 있었던 것"이라며 "자기가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게 정유정이었으면 조씨도 어떤 개인적 분노,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 시기, 질투가 만들어 놓은 범죄인 것"이라고 진단했다.
승 박사는 "정씨도 완벽하게 범죄를 계획하기 위해 흉기를 준비해서 굉장히 과잉 살상을 했다"며 "이 사건도 분명히 과잉 살상이고 목적 지향적으로 준비해서 공격했다. 피해자가 사망하는 것을 (보고도) 의도적으로 마지막까지 공격했던 상황이라서 어떤 개인적인 분노가 분명히 같이 이뤄진 범죄다"라고 설명했다.
승 박사는 조씨도 정씨처럼 범행 이후 비슷하게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정씨도 (시신이 담긴) 캐리어를 들고 '탁탁탁' 하는 모습, 소스라치게 소름이 끼치는 모습인데 이번도 똑같다"며 "그렇게 온몸에 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왔을 때 그 자리(범행 장소 인근)에 딱 앉아서 '내가 이런 행동 했다'라고 순순히 잡히는 모습, 어떻게 보면 잡히는 게 그렇게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또 특정 연령층 남성에 대해서만 공격성을 보인 것에 관해서도 승 박사는 "자기가 공격하다가 (남성들로부터) 저지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정하고 남성들에 대해서만 공격했고 한 사람에 대한 살인의 고의가 너무나 완벽했다"며 "살인하기 위해서 마지막 순간에도 그 살인의 고의를 놓치지 않는 모습들이 범행 현장에서 보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30대, 20대 남성에 대한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개인적인 분노가 분명히 있었다"고 판단했다.
범죄 성향과 동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그는 “가장 강력한 동기에 의한 살인이 나오게 된 이유를 알아야 그 다음 우리는 대책을 이야기할 수 있다”며 “그런데 국가는 지금까지 아주 편한 답을 했다. '이 사람은 사이코패스니까'(라면서). 사이코패스가 동기면 우리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조씨나 정씨와 같은 범죄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이코패스가 됐고 어떻게 범행에 이르게 됐는지 등 특정 개인의 생애를 살펴보는 질적 연구가 이뤄져야 제도 개선도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범죄 동기까지 파악해 내야만 유사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묻지마 범죄' 형량 강화만이 능사 아냐…치료적 개입·사회적 불평등 해소 필요”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의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게 범죄 예방에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개진하고 있다.
한국범죄정보연구에 실린 ‘이상동기(묻지마) 범죄에 대한 고찰 및 성향 분석’ 논문에서는 이상동기 범죄를 △이유 없는 범죄 △화풀이에 의한 범죄 △정신병에 의한 범죄로 분류한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이유 없는 범죄자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유형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범죄를 저지르며 신체를 이용해 수회간 폭행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화풀이에 의한 범죄자는 가정불화 등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범죄를 계획하고 수회간 흉기를 사용해 살인에 이르는 유형으로 범행 후 피해자 또는 유가족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범죄를 합리화한다. 정신병에 의한 범죄자는 정신병에 의해 범행을 저지르며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예기류와 둔기류를 이용해 범행하는 특징을 보인다.
해당 논문을 작성한 안상원 광운대 범죄학 박사는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화풀이에 의한 범죄”라고 분석했다. 안 박사는 “현재까지 드러난 정보로 보면 분노에 가득 차서 불특정 다수에게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화풀이에 의한 범죄는 가정 불화나 경제력 문제, 본인이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은 문제를 사회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나 처지를 알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잔혹한 범죄 유형에서는 주로 본인보다 약한 대상을 선택하는데 (조씨는) 20∼30대 건장한 남성을 선택했다는 점도 살펴봐야 한다”며 “또래 남성과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안 박사는 이 같은 화풀이에 의한 범죄자들의 경우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묻지마 범죄자는 처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범죄를 저지른다”며 “가정불화나 경제력에 대한 비관이 잔혹한 범죄로 이어지는 만큼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