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님 작품은 9월 이후에는 가격이 계속 올라갈 거예요.”
최근 2차 거래가 주로 이뤄지는 한 갤러리스트는 최근 미술시장 동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갤러리스트가 언급한 작가는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 그는 온 몸을 사용한 커다란 획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바디스케이프’ 연작으로 유명하다. 이미 잘 알려진 작가지만 이 갤러리스트가 특히 이건용 작가를 고평가 한 근거는 뉴욕. 오는 9월부터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릴 한국 실험미술 작가들의 대규모 전시 때문이다. 자신이 소장한 이건용의 작품을 꽤 고가의 가격에 내놓은 이 갤러리스트는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를 언급하며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을 사는 많은 컬렉터들이 시장에서 구겐하임에 갈 작가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유럽에서 활약하는 국내 작가들의 전시에 컬렉터들의 관심이 뜨겁다. 해외에서 전시가 진행되면 작가가 유명해지고, 작품 가격이 덩달아 올라갈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그런데 최근 세계에서도 가장 큰 미술 시장인 뉴욕에서 국내 현대미술 작가들의 전시가 연이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컬렉터들이 가장 주목하는 이벤트는 9월 1일부터 열리는 미국 구겐하임 전시. 김구림, 성능경, 이승택·이건용 등 한국의 실험미술 운동을 소개하는 최초의 전시다. 전시는 아카이브를 포함해 100여 점의 국내 실험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며, 10월에는 이건용, 11월에는 성능경, 12월에는 김구림 등이 퍼포먼스가 예정돼 있다. 작품은 구겐하임 전시를 마치고, 로스앤젤레스의 해머 미술관으로 옮겨가 전시를 이어간다.
사실 뉴욕에서는 이미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태다. 최근 뉴욕 록펠러 센터 앞에는 높이 6.3m의 거대한 숯 조형물이 전시됐는데, 이는 이배 작가의 작품, ‘불로부터’다. 거대한 조형물은 뉴요커들의 발길을 멈추기에 충분했고, 이와 함께 록펠러센터 내부에서는 박서보, 윤종숙 등 한국작가를 소개하는 전시가 함께 진행되기도 했다. 이처럼 뉴욕에서 수많은 작가들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면서, ‘포스트 이우환’이 될 만한 작가를 물색하고 있는 큰 손 미술품 컬렉터들이 올해 하반기 뉴욕을 일제히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뉴욕에 진출하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이미 수천~수억 원을 호가해 젊은 컬렉터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수백 만 원 대인 신진 작가의 작품을 무턱대고 사는 것도 모험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젊은 컬렉터들은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꾸준히 작품을 제작하는 더 젊은 작가를 찾고 있다. 국제갤러리 소속 설치미술가 양혜규가 대표적이다. 양혜규는 올해 하반기 오스트리아, 독일, 핀란드, 미국 등에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양혜규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작품 가격이 상승해 컬렉터들 사이에서 주목 받았는데 올해 4월에는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9000만 원에 작품이 판매돼, ‘블루칩’ 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MZ 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김지희 작가는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끌며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한 대형 갤러리 관계자는 “작가가 해외에서 전시해 주목 받으면 당연히 작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미술품 구매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인 작품활동의 지속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며 “미술 시장이 아직 조정기이기 때문에 컬렉터들은 좀 더 많이 공부해 신중하게 작품을 선정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