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균형이 2주 전보다도 한결 나아지셨는데요. 왼 발을 디딜 때 다리에 힘을 조금 더 주면서 밀어보세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본관 1층 로봇재활센터. 신모(59·남)씨가 하지재활 전문 보행로봇 ‘모닝워크’를 착용한 채 가상현실(VR) 화면을 보며 재활 훈련에 한창이었다. 신씨가 바라보는 화면은 흡사 닌텐도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연상케 했다. 신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잠시 스텝이 꼬일 때면 화면 속 아바타도 비틀거렸다.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골반 균형을 다잡은 채 보행을 재개하면 화면 속 아바타의 발걸음에 힘이 실리며 계기판 점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날 신씨의 최종 점수는 1450점. 한달 반 전쯤 시작한 첫 훈련날 500점을 채우기도 버거웠던 것과 비교하면 3배 가량 향상된 것이다. 신씨는 "화면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지나있다"며 "지루함이 덜하니 힘들게만 느껴지던 보행 훈련이 한결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신씨는 2020년 공사현장에서 크레인 작업을 하던 중 2만 2900V의 전기에 닿아 전신의 40%에 화상을 입었다. 고압 전기화상은 화상 부위 뿐 아니라 호흡기, 각종 장기, 관절 등 전신에 손상을 주는 중증 질환이다. 화상 흉터 때문에 서거나 걷는 등 일상적인 움직임도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절 구축에 의한 운동범위 제한과 비후성 반흔(피부가 딱딱해지고 두꺼워지는 상태)이 진행되는 만큼 적극적인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손상 범위가 넓은 중증 화상 환자들은 통증이 심할 뿐 아니라 심부조직이 손상돼 자세 유지는 물론 균형을 잡기도 어렵다. 신씨 역시 화상외과에서 수차례 수술을 받는 동안 10개의 발가락을 모두 절단해 재활을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합병증으로 급성 폐부전까지 생겨 오랜 기간 중환자실 신세를 진 데다 왼쪽 골반에 골수염까지 생겨 보행 재활이 더욱 늦어졌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지팡이의 도움 없이는 똑바로 서서 걷기 힘들 정도다. 신씨는 모닝워크 도입 이후 뒤늦은 보행 재활 훈련에 재미를 붙였다.
보건복지부 지정 대학병원 유일의 화상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은 화상 환자의 효과적인 보행 훈련을 위한 로봇재활 치료 시스템 구축에 힘쓰고 있다. 보행보조로봇을 활용하면 환자마다 다른 근력, 무릎 높이 등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며 부족한 하지 기능을 보완하고 정상적인 보행 패턴을 익힐 수 있다. 앞서 한강성심병원 의료진들은 2018년 도입한 웨어러블 보행보조로봇 ‘슈바(SUBAR)’를 통해 로봇재활 훈련이 화상 환자의 관절 가동범위와 보행 기능을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점을 밝혔다. 올해 7월부터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사회적약자 편익지원사업에 선정돼 국산 로봇 ‘모닝워크’를 도입했다. 모닝워크는 2017년 큐렉소(060280)가 현대중공업 의료로봇 사업부를 양수한 후 지속적인 제품 고도화를 거쳐 선보인 차세대 보행보조로봇이다. 착석형 체중지지 시스템과 발판기반형 보행보조 시스템을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 외골격형 모델과 달리 피부에 닿는 면적이 거의 없다. 급성기 화상 환자에게 적용하기 제약이 적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계단 및 경사 오르내리기, 편마비 환자의 보행 및 균형 능력 발전을 위한 한발 훈련 등도 가능하다.
주소영 한강성심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모닝워크를 활용하면 중증 화상 환자의 재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며 “VR 시스템과 연동해 재활 훈련에 대한 동기부여와 보행 패턴 등에 대한 직관적 피드백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보행재활은 중증 화상 환자의 사회적 복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다만 혁신을 거듭 중인 의과학 기술이 무색하게도 화상 재활에 대한 별도 수가가 없어 치료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화상 환자의 보행 훈련은 로봇이 없으면 물리치료사 2~3명이 꼬박 1시간씩 달라붙어야 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지만 의료 수가는 관절염과 동일한 7000원이다. 신경손상 등으로 재활이 불가피한 중증 화상 환자도 산재 인정이 되지 않으면 별도 지원을 받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복지부 지정 화상전문병원 중 재활의학과를 갖춘 곳은 한강성심병원이 유일하다. 한강성심병원도 경영진의 전폭적 지원 없이는 현 시스템을 지속하기 힘든 수준이다. 주 교수는 “중증 화상 환자 중에는 직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젊은 연령대가 많다”며 “급성기 치료는 물론 재활 분야에도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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