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중국의 추격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저가 물량 공세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추월한 데 이어 같은 전략으로 한국 디스플레이의 주력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아직 기술 격차는 크지만 해가 지날수록 따라붙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신기술을 통한 시장 확장,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 등 전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K-디스플레이 텃밭 OLED까지 넘보는 中…인력·기술 침탈까지
29일 시장 조사 업체 유비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스마트폰용 OLED 출하량에서 2025년부터 한국 업체들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중국의 스마트폰용 OLED 출하량 비율은 2023년 현재 57.6%, 42.4%다. 하지만 중국의 적극적인 추격 전략 속에 한중의 출하량 격차가 내년 53.0% 대 47.0%로 좁혀지고 2025년에는 45.2% 대 54.8%로 역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2026년 39.0%(중국 61.0%), 2027년 35.8%(64.2%) 등으로 점점 열세에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업체들이 저품질·저가 물량 공세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매출액 기준으로는 당분간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034220) 등 한국 업체들의 우위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중국의 OLED 출하량이 늘면서 매출 격차도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업체들은 막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앞세워 OLED 시장의 선두인 한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유비리서치는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한국을 추격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한국 업체들이 중국을 뒤쫓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는 디스플레이 업계의 절대 강자인 한국에 긴장감을 주는 신호다. OLED 시장에서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인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중국 정부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물량 공세를 퍼붓고 있다.
열세인 기술 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국내 업체들의 핵심 인력과 기술을 탈취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수배에 달하는 급여로 국내 OLED 핵심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데 치중하는 한편 특허 도용 의혹도 꾸준히 불거지고 있다. 최권영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은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지적 자산에 대한 도용·침해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중국 업체를 겨냥해 발언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업체들과 중국 주요 업체들 간의 기술 격차를 2년에서 최대 5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순수한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했을 때의 전제고, 인력 등을 대거 흡수하고 자본을 대량 투입하며 따라붙으면 이 간극은 더 빠르게 좁혀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애플 앞세워 ‘초격차’ 유지…IT용 OLED ‘큰 판’ 열린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의 추격 속에 OLED를 활용한 신시장 개척,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 선점 등으로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추격 신호가 뚜렷한 상황에서도 직접적인 대응 전략을 고민하기보다는 기존 사업 전략을 그대로 추진해나가는 게 더 낫다는 반응이다. 물량 공세가 신경쓰이긴 해도 수익성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고, 첨단 기술 경쟁 단계에서는 상대도 안 될 수준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OLED가 활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 중 스마트폰 시장 정도에서만 물량 수준에서 근접했을 뿐이고, 태블릿·노트북 등에 활용되는 정보기술(IT)용 OLED나 TV용 OLED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압도적인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패널의 경우에도 시장 포화 상태인 전체 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폴더블의 경우 삼성디스플레이가 85.8%(매출 기준)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TV에 주로 활용되는 대형 OLED는 LG디스플레이가 시장 지배력을 굳게 다지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OLED 시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분야가 IT용 시장이라고 보고 있다. 태블릿·노트북 등에 주로 사용되는 중형 디스플레이다. 내년 출시될 애플의 신작 아이패드에 OLED가 탑재되면서 본격적으로 태블릿·노트북의 OLED 채택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태블릿·노트북 시장에서 OLED가 탑재된 제품은 8% 미만에 그치고 있어 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IT용 OLED 디스플레이 출하량이 2029년까지 연평균 37%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시장 또한 삼성디스플레이가 76.7%(매출 기준)을 장악하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태블릿용 OLED 시장이 곧 열릴 텐데 그 시장을 어떻게 선점할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XR·차량용, 마이크로LED 등 기술 선점 주력…"정부 지원으로 뒷받쳐야"
국내 업체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리지 않은 확장현실(XR), 차량용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등 OLED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장 확장에도 집중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실리콘 웨이퍼를 사용해 전력 소모가 낮고 가벼운 ‘올레도스(OLEDoS)’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미국의 XR 패널 기업인 이매진을 인수하기도 했다.
차량용 디스플레이에서도 삼성디스플레이는 페라리·BMW·아우디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와의 협력을 넓히고 있다. LG디스플레이도 메르세데스벤츠와 20년째 협력 관계를 이어오면서 관련 시장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OLED 시장에서의 격차 확대에 주력하는 한편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와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상용화를 앞당겨 기술 격차를 넓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초대형 마이크로 LED TV를 출시하며 시장을 선점했고 LG디스플레이는 마이크로 LED 기반으로 자유자재로 늘리고 접을 수 있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등 이 분야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
주대영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업체들이 기술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 지원에서는 중국에 턱없이 밀리고 있기 때문에 시장 주도권 우위 차원에서 관심을 더 쏟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