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균열은 의심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의심은 사소한 계기로부터 태어난다. 신혼부부를 소재로 수면 장애를 앓는 남편과의 갈등을 다룬 영화 '잠'(감독 유재선)은 이러한 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이 어느 날 현수의 이상한 수면 장애 행동을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은 스릴러물이다. 초반에는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점차 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생고기와 날달걀을 먹어치우는 기괴한 모습을 보이며 부부의 사이는 한없이 멀어져 간다.
결국 수진은 친정어머니가 권유한 무속 신앙까지 믿어가며 현수의 수면 장애 행동을 저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가정을 지키기에는 속수무책인 그의 행동들에 수진은 지치기 시작하고 부부의 사이는 파탄으로 향해 나아간다.
인간의 공포심을 가장 크게 유발할 수 있는 존재는 일상적인 존재다. 인간은 잠을 자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하루에 있어서 한 번은 지나쳐야 할 과정이기에 더욱 무서운 존재로 다가온다. 이러한 점을 이용한 스릴러물인 '잠'은 관객들로 하여금 과몰입을 유발하게 만든다. 특히 신혼부부의 입장이라면 남편 현수의 모습을 보며 굉장한 공포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여기에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에서 호흡을 맞췄던 정유미, 이선균의 연기 호흡은 작품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부부 사이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달달한 부부의 모습에서 광기 어린 대립 관계로 진화되기 전까지 감정의 흐름을 배우 각자만의 텐션으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딱히 크게 공포스러운 장면이 없음에도 단지 심리 묘사 하나만으로 둘 사이에 있는 거대한 문제의 벽을 드러냈다.
'잠'의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부에서 일했던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은 "작지만 단단하고 보석 같은 영화"라고 '잠'을 극찬했으며 이 말을 증명하듯 칸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공식 초청돼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잠'이 지닌 작품성을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가 지닌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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