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신인 보이 그룹 라이즈(RIIZE)를 시작으로 'SM 3.0'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올해 초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가 발표한 SM 3.0 이후 데뷔한 SM의 첫 번째 아이돌, 라이즈는 메타버스 세계인 ‘광야’로 대표되는 SM 특유의 세계관은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한 콘셉트의 곡 '겟 어 기타(Get A Guiter)'로 대중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신규 그룹 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광야의 아이돌’로 불리던 SM의 간판 걸그룹 에스파도 지난 5월 발매한 신보 '마이 월드(MY WORLD)'를 통해 전작 '걸스(GIRLS)'에서 고집하던 '광야'와 AI 캐릭터 '나비스'를 등졌다. 비주얼 콘셉트도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가 됐다. SM이 광야를 과감히 내려놓고 현실로 돌아온 기점은 바로 국내 기업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의 손을 잡은 직후다. 치열한 인수전의 진통 속에 손을 잡은 카카오와 SM에선 지금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나고 있을까.
◇크고 싶은 카카오-바꾸고 싶은 SM = 사실 오래 전부터 카카오는 음반·음원 시장에서의 성장 의지를 꾸준히 보여왔다. 이러한 열망은 2016년 로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후 날개를 달았다. 로엔 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을 보유한 회사다. 카카오는 로엔 인수 뒤 음악 사업에서만 매년 10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기업 가치는 인수 7년 만에 약 3배 넘게 증가한 6조 원으로 평가 받았다. 카카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국내 중소 연예 기획사를 다수 인수했다. 현재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이담엔터테인먼트, 안테나뮤직, 하이업엔터테인먼트, IST엔터테인먼트 등 다수의 기획사가 카카오 산하 레이블로 있다. 국내 음악 시장 저변을 넓힌 카카오는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 때 나타난 것이 바로 SM이었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에는 아이유, 아이브 등 유명 아티스트가 많지만, 글로벌 성장을 위해서는 더 많은 글로벌 아티스트IP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영향력을 가진 SM 음악·아티스트 지적재산권(IP)를 확보해 글로벌 사업 경쟁력을 키우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웹소설' 선보이고 북미 진출…라이즈로 보는 SM 3.0 =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 라이즈에는 SM의 카카오 시대를 엿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라이즈는 SM이 카카오와 손잡은 후 선보이는 첫 신인이자, SM이 무려 7년 만에 선보이는 보이그룹이다. 데뷔 성적표는 준수하다. 정식 데뷔 전부터 SNS 계정 팔로워가 100만 명을 넘었고, '겟 어 기타'는 선주문량 100만 장을 돌파해 데뷔 앨범임에도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라이즈와 앨범을 기획하는데에는 SM이 사실상 독자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대신 카카오는 웹툰·웹소설 사업의 선두를 달리는 만큼 스토리 IP를 활용하는데 집중했다. 지난달 카카오페이지에서 공개된 웹소설 '라이즈 앤 리얼라이즈'가 그 결과물이다. 8편 분량의 웹소설에는 라이즈 멤버들이 등장해 팀을 꾸려나가는 이야기가 담겼다. 나아가 카카오가 넷마블과 합작해 버추얼 걸그룹 '메이브' 등을 선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버추얼 라이즈’의 등장도 기대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기본적으로 카카오의 다양한 음악 유통 경로를 통해 SM의 아티스트와 콘텐츠가 적극적으로 소개될 공산이 크다. 카카오는 현재 글로벌 K-팝 미디어 ‘원더케이’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을 통해 두 기업이 겨냥하는 시장은 국내보다는 북미 시장이다. 미국은 팝의 본고장이자 전 세계 음악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이다. 미국 레코드 산업 협회(RIAA)가 발표한 올해 중반 수익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음악 매출은 약 11조를 기록했다. '꿈'이라고 부르는 시장이었지만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이 성공적으로 북미 시장에 안착하며 K-팝은 북미에서 주류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지난달 카카오와 SM은 북미 시장에 통합 법인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통합 법인 대표장은 카카오 아메리카의 수장인 장윤중 대표다. 그는 소니뮤직코리아에 몸담고 있을 적 구축한 현지 메이저 음반사와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SM 아티스트의 현지 진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덕분에 라이즈는 정식 데뷔 전부터 이례적으로 미국 메이저 음반사인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산하 RCA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해 주목받았다. 이들은 곧 북미 지역에서 첫 싱글 앨범 '겟 어 기타'를 발매할 예정이다.
◇SM의 북미 전략, 하이브·JYP와는 뭐가 다른가 = SM의 북미 전략은 다른 대형 기획사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먼저 방탄소년단으로 북미 시장을 열어 젖힌 하이브는 최근 세계 3대 메이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UMG)의 산하 레이블 게펜 레코드와 손을 잡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더 데뷔 : 드림 아카데미'에서는 12개 지역 출신의 20명의 연습생이 경쟁한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K-팝의 방법론을 글로벌 시장에 적용해 글로벌 그룹을 만들겠다"고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도 현지화 그룹 론칭에 초점을 맞췄다. 소속사는 유니버설 뮤직의 또 다른 레이블인 리퍼블릭 레코드와 합작해 북미 현지화 걸그룹 멤버를 선발하는 오디션인 'A2K'를 선보였고, 지난 22일 글로벌 걸그룹 VCHA 멤버를 확정했다.
반면 SM과 카카오는 현지화 그룹 론칭보다는, 우선 국내 아티스트를 효과적으로 수출하는 데 방점을 뒀다. SM의 글로벌 IP와 제작 역량, 카카오의 음원·음반 유통 네트워크와 멀티 레이블 시스템 등 양사의 핵심역량을 집중해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겠다는 방침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인 북미를 핵심 거점으로 견고한 사업 협력 기반과 노하우를 확보하고, 유럽 등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가속하겠다는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글로벌 K-팝 키플레이어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K-컬처의 수출 확대 및 글로벌 위상 강화를 이끌겠다는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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