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금까지 한.. 2000~3000만 원 정도 썼죠”
2023시즌 KBO리그가 막바지를 향해 가는 가운데 올 한 해 적게는 500만 원부터 많게는 3000만 원까지 오로지 야구만를 위해 돈을 지불한 사람들이 있어 화제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다섯 명의 ‘레전드 야구팬’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매 경기마다 포수 뒷좌석에 앉아 밀리터리 유니폼을 입고 묵묵히 응원하는 키움 히어로즈의 밀저씨, 29년째 LG 트윈스의 우승을 기원하며 빗자루와 플래카드를 들고 경기장에 나오는 LG 트윈스의 빗자루아저씨, NC 다이노스의 상징인 공룡 옷을 입고 야구장을 찾는 NC 다이노스의 공룡좌, 삼성 라이온즈의 박진만 감독을 닮아 화제가 된 삼성 라이온즈의 짭진만, 흰장갑을 낀 채로 응원단 못지않은 칼각을 유지하며 춤을 선보이는 KT 위즈의 텐션가이 등이다.
이들은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전국 야구장을 누빈다. 한 시즌에 홈 경기를 모두 볼 수 있는 시즌권은 이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정도. 얼마 남지 않은 포스트시즌, 즉 본격적인 가을 야구 시즌을 맞이해 일큐육공이 화제의 야구팬 다섯 분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5인방의 야구 사랑? 최소 20년 이상, 또는 창단 때부터
이들은 한국 프로야구선수들도 익히 알고 있는 유명인사들이다. 김휘집 키움 히어로즈 선수는 “(밀저씨가) 좀 늦게 오시는 날이 있으면 ‘왜 안 오시나’하고 살짝 걱정된다”고 했고, 정우영 LG 트윈스 선수는 “빗자루 들고 응원해주시는 분, 워낙 열심히 응원해주셔서 너무 잘 알고 있다”며 친근함을 나타냈다.
야구선수와 야구팬 모두에게 주목받는 5인방의 야구 사랑은 길게는 수십년에 달할 정도다. 대표적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짭진만, 키움 히어로즈의 밀저씨, LG 트윈스의 빗자루아저씨는 모두 20년 이상 응원에 매진한 ‘찐팬’이다.
짭진만은 대구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대구를 연고지로 둔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됐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에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을 어머니 뱃속에서 봤다고 말할 정도로 뼛속부터 푸른 피가 흐르는 ‘21년차 팬’이다.
키움 히어로즈의 밀저씨는 키움 히어로즈가 재창단되기 전인 현대 유니콘스 시절, 초록색과 검정색이 혼합된 현대 유니콘스의 엠블럼에 빠져 1998년쯤 현대 유니콘스의 팬이 됐다. 그러다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키움 히어로즈로 재창단하면서 키움 히어로즈의 팬으로 넘어왔다.
LG 트윈스의 빗자루아저씨는 1994년부터 LG 트윈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LG가 독립운동 기업이라는 소식을 듣고 LG 트윈스의 팬이 되기로 한 것. 비교적 최근에 창단한 NC 다이노스의 공룡좌와 KT 위즈의 텐션가이는 창단 때부터 팬으로, 각각 창단년도인 2011년과 2012년부터 팀을 응원하고 있다.
매 경기 놓치지 않고 야구장을 찾다 보니 ‘재벌 2세’가 아니냐는 오해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직장인 혹은 대학생이었다. 올해 21살로 다섯 명 가운데 막내인 짭진만은 대구에 자리한 대학의 스포츠마케팅학과에 재학 중인 2학년 학생이고, 밀저씨·공룡좌·텐션가이는 주5일 출퇴근하는 직장인, 빗자루아저씨는 영어·독어 동시통역가다. 이들이 시즌 기간 사용하는 막대한 비용은 경기가 없는 비시즌 동안 하루에 5만 원씩 돈을 넣는 야구 적금을 만드는 등 ‘야구’만을 위한 돈을 따로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알아보시는 만큼 책임감이 생겼죠”…우리는 몰랐던 그들의 노력
적지 않은 시간 팀을 위해 열렬히 응원하다 보니 야구장을 찾는 관중들도 이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진 촬영은 물론 간간히 사인 요청까지 들어와 짭진만은 아예 야구팬을 위한 사인을 만들었다. 이처럼 5인방은 높아지는 인지도만큼 책임감도 커졌다며 야구장 안팎에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빗자루아저씨는 야구장에서 술은 먹지 말자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주변 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야구장에서 알코올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게 철칙이다. 최근 중계에 잡힌 맥주 마시는 모습은 다른 LG 트윈스 팬이 건넨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던 것. 하지만 시뻘건 얼굴 때문에 술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빗자루아저씨는 “약 1년 동안 야구장을 다니면서 얼굴이 많이 탔다”며 “일주일 동안 야구를 쉬는 올스타 브레이크 땐 얼굴이 하얘지지만 그건 잠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텐션가이는 장래희망이 ‘텐션가이’라는 한 초등학생 덕분에 더욱 열과 성을 다하는 중이다. 학생은 야구를 좋아해 야구를 직접 하고 싶었지만, 학창시절에 잠시나마 야구선수로 활동했던 아버지가 반대해 구단의 응원단장으로 꿈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 학생의 눈에 응원단장 못지않게 열렬히 응원하는 텐션가이가 들어왔고 자신이 좋아하는 응원을 응원단장 못지않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장래희망이 ‘텐션가이’가 된 것이다. 텐션가이는 “장래희망이 저라는 얘기에 무척 고맙고 감격스러웠다”며 “최대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동작과 응원에 더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밀저씨는 팀내 모든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유니폼에 마킹을 하지 않는 것. 대부분 유니폼 뒷면에 좋아하는 선수 한 명의 이름을 새겨 특정 선수를 응원하지만 밀저씨는 몇 년 전부터 별도의 마킹을 하고 있지 않다. 선수 개개인보다 구단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밀저씨는 “예전에는 대주자나 각광을 못 받는 선수들 위주로 마킹을 했지만, 요즘엔 그런 선수가 잘 안 보이기도 하고 거의 다 동등한 위치에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며 “저라도 구단 전체를 응원하기 위해 마킹을 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구장을 뜨겁게 달구는 빗자루아저씨, 텐션가이, 공룡좌, 밀저씨, 짭진만 등 다섯 명의 야구찐팬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는 일큐육공 풀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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