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이 넘어 췌장암 진단을 받아도 체력 조건이 뒷받침된다면 수술을 고려할 만 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신상현 삼성서울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연구팀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췌장 두부에 생긴 암으로 췌십이지장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 666명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14일 밝혔다.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13.9%에 불과해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췌장의 머리 부분에 암이 생기면 황달 등의 증상이 나타나비교적 일찍 진단되기 때문에 수술이 가능하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수술을 받은 환자의 생존기간은 12.6개월(중앙값)로, 수술을 받지 않은 경우보다 4배 가량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십이지장·담도·담낭 등 췌장과 인접한 장기를 절제하고 연결해야 해 수술 난이도가 높은 데다 합병증 발생률이 최대 40%에 달해 고령 환자들은 선뜻 수술을 받기 쉽지 않았다. 수술 중 췌장에 누출(누공)이 생기거나 혈관이 파열될 경우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하다 보니 의료진의 부담도 매우 컸다. 2019년에 췌장암 수술을 받았던 환자 666명 중 80대 이상은 3.6%(24명)에 불과했다. 전체 췌장암 환자의 20~30% 정도가 수술을 받는다고 알려진 것과 비교해도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연구팀은 지난 10년간 췌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 666명을 80세 미만 환자(642명)와 80세 이상 환자(24명)로 나누고 전반적인 건강상태(ASA score)와 심뇌혈관, 심폐질환 등 두 집단의 수술 관련 조건을 균질하게 보정한 뒤 예후를 비교했다. 그 결과 80대 미만 그룹의 평균 재원일수는 12.6일로, 80대 이상 그룹(13.7일)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전체 생존기간은 80대 미만 그룹이 18개월, 80세 이상 그룹이 16개월로 유사했다. 종양이 더 커지지 않고 생존한 기간을 의미하는 무진행 생존기간은 각각 11개월과 8개월로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합병증 발병률도 나이와 관계 없이 엇비슷했고 80대 이상 그룹에 포함됐던 6명은 수술 후 24개월 이상 생존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나이가 수술 경과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다는 의미다.
췌장암은 나이가 많을수록 발생률이 증가한다. 국가암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췌장암을 새롭게 진단받은 환자 8099명 중 80세 이상이 21.3%(1727명)로 집계됐다. 췌장암 환자 5명 중 1명이 80세가 넘어 진단된 셈이다.
신 교수는 “건강상 다른 요인 없이 나이를 기준으로 췌장암 수술이 어렵다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아직 극복할 과제가 많지만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기대 여명을 늘릴 기회를 제공하고 환자에게 선택할 권리를 줄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호주외과학회지(ANZ Journal of Surgery)' 최근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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