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스토킹 범죄로 규정하는 범위를 확대해 새로운 판례를 제시했다. 경미한 수준이더라도 누적·반복된 행위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하다면 범죄라는 판단이어서, 스토킹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선례가 될 전망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상고기각으로 확정했다. A씨의 행위를 범죄로 인정한 2심 판결과 같은 판단을 한 것이다.
A씨는 지난해 10월 15일부터 약 한 달간 여섯 차례에 걸쳐 이혼한 B씨의 집에 찾아가 B씨와 자녀를 기다리거나 현관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는 등 B씨에게 접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3월 B씨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위반해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켰다.
재판의 쟁점은 스토킹범죄 성립 요건에 따라 갈렸다. 불안감·공포심을 실제로 일으켰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하는 '침해범'이냐, 그런 위험의 야기만으로도 성립되는 '위험범'이냐 여부였다. 피해의 가능성이 인정되는 경우까지 범죄로 본다는 점에서, 전자보다 후자가 스토킹범죄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입장이다.
1심 유죄 선고에 불복한 A씨는 항소심에서 6차례 중 4차례는 실제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켰다고 볼 수 없어 스토킹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의 쟁점을 기준으로 스토킹범죄가 침해범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2심은 초기 스토킹 행위를 막아 폭행·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됐다는 점, 미수범에 대한 처벌 규정이 따로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스토킹범죄는 침해범이 아닌 위험범으로 해석하고, 원심을 기각했다.
2심은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면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이를 느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하고, 이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면 스토킹 범죄를 구성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B씨가 경찰에게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등 일부 행위가 실제로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스토킹범죄가 위험범이라는 2심의 논리를 수긍하며 같은 판단을 했다.
A씨가 1개월 정도의 기간에 비교적 경미한 개별 행위뿐만 아니라 스스로 스토킹 범행이라고 인정한 행위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불안감·공포심이 비약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충분해 전체를 스토킹 범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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