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역사는 만드는 자가 아닌, 기록하는 자의 몫이다.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의 일원이었던 전두환을 필두로 일어난 군사 쿠데타 '12.12 군사반란'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던 시절 고3이었고 자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날의 소리를 들었다. 오랫동안 미뤄뒀던 숙제를 풀어내는 심정으로 이 사건을 정면으로 응시한 그는 욕망 어린 한 집단이 대한민국 전체를 집어삼킨 그날의 기억을 스크린에 옮겼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역사의 주도권을 쥐려는 전두광(황정민)과 그의 무리들이 서울을 차지하기 위해 수도경비사령관인 이태신(정우성)과 맞붙는 이야기가 그려지는 작품이다. 긴박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동시에 진압군, 반란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결말까지 달려간다. '남산의 부장들'을 제작했던 하이브미디어코프가 다시 제작을 맡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역사의 흐름으로 봤을 때 '서울의 봄'은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의 다음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이후 무너진 권력 체계 속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역사 속 전두환의 행보를 극중 인물 전두광을 통해 조명한다.
'서울의 봄'은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국민을 지키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자들이 외려 권력을 쥐려 다투는 추악한 민낯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영화는 박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안사령관 전두광은 암살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돼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된다. 전두광의 권력욕에서 위험을 감지한 계엄사령관 정상호(이성민)는 투철한 군인 정신을 가진 이태신에게 수도경비사령부를 맡겨 전두광을 견제하려고 한다. 연말 인사에서 좌천될 위기에 몰린 전두광은 정상호를 끌어내리기로 결심한다. 그는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핵심 멤버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정상호를 박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엮어 체포하고 무력을 동원해 군을 장악할 음모를 꾸민다. 전두광은 하나회 멤버인 9사단장 노태건(박해준)의 도움을 받아 전방 부대까지 서울로 끌어들이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이 강력한 저항에 나서면서 서울 시내에서 대규모 무력 충돌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다.
'서울의 봄' 핵심 등장인물인 전두광은 비슷한 이름만큼이나 외모또한 전두환을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다. 황정민은 실제 인물의 외형과 비슷한 모습으로 파격 변신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려 4시간의 분장을 통해 완성된 모습은 전두환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연기에 머물렀다는 혹평을 들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선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이며 새로운 캐릭터로 확장했다는 평가다. 특히 하나회 회동 당시 무리의 선봉에 서서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장면, 화장실에서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밖에 이태신 역을 맡은 정우성을 비롯해 정상호 역의 이성민, 김준엽 역의 김성균 등 연기파 배우들이 탄탄하게 서사를 받쳐주며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특별 출연으로 등장하는 대세 스타 정해인, 이준혁의 존재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극 중에서 전두광은 작품 속에서 쿠데타를 진행하면서 최전방 부대 병력을 자신의 병력에 합류시키고 "북에서 쳐들어와도 괜찮냐"는 주변의 우려에 "김일성은 때려죽여도 안 내려온다"고 큰소리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한 인물의 사욕과 그를 따르는 이들의 집단 욕망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서사에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져 탄생한 '서울의 봄'은 우리 시대가 잠시 잊고 있었던 그날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를 위해 전두광의 욕망이 펼쳐진 12월 12일 전두광의 폭주를 막기 위해 나선 젊은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역사 속 지워진 이름들을 하나씩 발굴해낸다. 이와 함께 국가가 아닌 자신의 영달을 꿈꾸며 비겁한 선택을 한 이들의 얼굴과 이름도 공개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시대의 거센 압박 속에 신념을 저버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근본을 지킨 이들의 자세가 그렇지 않은, 혹은 그렇지 못했던 자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관객들로 하여금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편 김성수 감독은 2019년 제작사로부터 시나리오를 받고 고민 끝에 연출을 맡기로 했다고 한다. 12·12 군사반란을 그린 TV 드라마는 있지만, 이 사건을 영화화한 건 '서울의 봄'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컸다는 후문이다.
22일 개봉. 141분. 12세 관람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jean@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