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으로 서울 강남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가 2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규홍 이지영 김슬기 부장판사)는 2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어린이보호구역치사·위험운전치사,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0)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유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고, 결국 가족과 본인을 모두 망쳤다"며 "술을 마셨지만 조심히 운전하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평소처럼 술을 곁들여 식사하고 운전대를 잡았다"고 질책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2일 낮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운전하다 하교 중이던 B(당세 9세)군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다. A씨는 B군을 차로 치고도 현장을 이탈해 인근 자택까지 이동한 뒤 사고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 5월 "A씨의 도주 의사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뺑소니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특가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위험운전치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실체적 경합이 아닌 상상적 경합으로 형을 정했다. 실체적 경합은 개별 혐의에 대해 가중처벌할 수 있지만 상상적 경합은 가장 중한 1개의 혐의로만 처벌한다.
재판부는 "하나의 교통사고를 낸 경우 각 과실마다 별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며 1심의 유죄 부분에 직권 파기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의 뺑소니 혐의에 대해서는 2심 재판부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공탁금도 양형에 일부 반영됐다. A씨는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면서 총 5억원의 공탁금을 내 논란이 됐다. 재판부는 "형사공탁제도가 시행된 이후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엄벌을 탄원한 경우에도 유리한 양형으로 고려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면서도 "공탁을 회수도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변제하기 위해 노력한 점과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선고 직후 B군의 아버지는 취재진에게 “과연 법원이 시민들의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 얼마나 경청하고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며 “2심 선고기일이 2주 지연됐는데, 그 다음날 바로 기습 공탁이 이뤄졌다. 받을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양형에 일부 참작됐다는 점이 이해가 안 된다”며 상고의 뜻을 내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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