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7개월째 오름세를 보이며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특히 의류 물가는 30여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른 가운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조·유통 일괄(SPA) 패션 브랜드들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은 한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자린고비’형 소비를 자처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명품·고액가전 등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소비 양극화가 심해지는 모습이다. 특히 취향에 따라 지갑을 과감하게 여는 소비자들이 늘며 프리미엄 와인 시장은 ‘불황 속 호황’을 보내고 있다.
고물가 한파에 소비심리 꽁꽁…심리지수 넉달째 내리막
2일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지수(113.37)는 전년 동월 대비 3.8%를 상승하며 지난 3월 이후 7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올랐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작년 7월(6.3%)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7월을 기점으로 1년여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특히 의류·신발 소비자물가지수는 올 10월 8.1% 상승하며 1992년 2월 이후 30여년 만에 최대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부자재비 상승과 엔데믹 이후 외부 활동 증가가 맞물리면서 코로나19 기간 주춤했던 의류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모양새다. 같은 달 식료품·비주류음료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6.7% 상승하며 고공행진하는 모습이다.
고물가 한파에 소비 심리도 ‘꽁꽁’ 얼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7.2로 전월 98.1 대비 0.9포인트(p) 내렸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 7월 103.2로 오른 이후 넉 달 연속 하락세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보다 높으면 장기평균(2003~2022년)과 비교해 소비심리가 낙관적,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올여름(6~8월) 잠깐 100을 넘어섰다가, 이내 하향 곡선을 그렸다.
“한푼이라도 더 아껴야”…‘가성비’ SPA 브랜드 인기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주머니 사정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겉치레보다는 실속을 따지며 자린고비를 자처하고 있다. 특히 패션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SPA 브랜드를 많이 찾는 분위기다. 스파오는 웜테크(발열내의) 생산량을 늘리고 가격을 1만 5900원에서 1만 2900원으로 인하했는데, 올해 11월 중순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00% 성장했다. 같은 기간 경량 패딩인 라이트재킷은 매출이 540% 올랐다. 스파오의 올 겨울 의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이상 성장했다. 에잇세컨즈도 10월 말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10%가 넘는 신장률을 보였다.
탑텐은 올해 매출액이 사상 최대인 9000억 원으로 전망되며 유니클로를 누르고 ‘SPA 1위’ 자리를 꿰찰 것으로 기대된다. 탑텐의 매출은 2019년 3340억 원에서 2020년 4300억 원, 지난해 7800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이다. 유니클로 운영하는 에프엘알코리아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1348억 원으로 전년 대비 73.0% 증가하며 ‘노(NO)재팬’ 불매 운동 충격에서 벗어나 실적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경기 침체에도 과감한 ‘플렉스’…모래시계형 소비 양극화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고가 상품과 가성비 상품으로 쏠리는 소비 양극화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G마켓이 자체 할인 행사인 ‘빅스마일데이’ 오픈 후 일주일(11월6~12일)간 거래액을 분석한 결과, 가전·명품 등 고액상품군의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68% 급증했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e쿠폰·생필품 등 저가 상품군 역시 15% 증가했다.
G마켓은 소비자들이 고가의 플렉스형 상품에 지갑을 과감하게 열면서도, 동시에 자린고비형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G마켓 행사 기간 여행·항공권은 98%, 시계 등 명품잡화도 48% 더 팔렸다. 가전·명품·여행 등 관련 상품군의 고객 1인당 평균 구매 객단가는 작년보다 18% 상승했다. 로봇청소기가 포함된 ‘생활미용가전’ 거래액은 121%, ‘계절가전’은 56% 늘었다. 동시에 생활 비용을 아끼기 위한 ‘쟁여두기용’ 상품도 불티나게 팔리면서, ‘e쿠폰’ 거래액이 14% 증가했고 ‘문구용품’(16%), ‘생필품’(13%), ‘커피음료’(11%), ‘가공식품’(6%) 등이 모두 신장했다.
“취향 소비는 굳건” 프리미엄 와인 ‘나홀로 성장’
주류업계에서는 엔데믹 이후 와인의 인기가 시들해진 와중에 프리미엄 와인은 ‘나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1~10월 들어 우리나라의 와인 수입량은 약 18.8% 크게 줄어든 반면, 백화점 와인 매출은 16~20%가량 성장했다. 롯데백화점의 9월~11월말 와인 매출은 20.0% 신장했고,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도 15.7% 늘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동안 ‘홈술’ 문화가 정착하면서 와인을 즐기던 2030 소비자들이 고물가에 밀려 가격이 저렴한 하이볼·소주·맥주 등을 다시 찾기 시작한 반면, 와인 애호가들은 여전히 고가의 제품들을 즐기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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