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싸웠던 충무공 이순신의 마지막이 담긴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오는 20일 극장가를 찾아온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김한민 감독이 탄생시킨 '명량'(2014), '한산: 용의 출현'(2022)에 이은 ‘이순신 3부작’의 최종장이다. 역사 속 풍전등화였던 조선을 지킨 영웅으로 현대까지 귀감이 되고 있는 그의 마지막 흔적을 생생하게 그려낸 '노량: 죽음의 바다'는 1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이순신 시리즈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김한민 감독이 탄생시킨 ‘이순신 3부작’의 최종장 = 2014년 개봉한 이순신 시리즈의 시작 ‘명량’은 1597년 임진왜란 6년,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이 조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이후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왜군을 물리친 ‘명량해전’의 이야기를, 2022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직후 단 15일 만에 한양이 뺏긴 상황에서 일본 수군을 박살내기 위해 이순신이 앞장서서 싸운 ‘한산도대첩’의 이야기를 그렸다. 시간 순으로는 '한산: 용의 출현', '명량', 그리고 '노량: 죽음의 바다'로 나열할 수 있으며 이에 맞게 임진왜란 초기의 이순신은 박해일, 임진왜란 말미의 이순신은 최민식이, 그리고 임진왜란을 종식시키며 죽음을 맞이하는 이순신은 김윤석이 연기했다. '한산: 용의 출현'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던 시기 김한민 감독은 '노량' 촬영을 마친 후 후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1년 사이에 '이순신 시리즈'의 2편과 3편을 선보이게 됐다.
오래 전부터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김한민 감독은 철저한 대비와 전략으로 수세적인 국면을 뒤집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에 있는 단단한 의지와 힘을 스크린에 옮겨오고자 했다. 그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구심점으로 내세운 3부작을 구상하며 지금의 어지러운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도 이순신이 지닌 상징성이 지닌 힘을 전하고자 메가폰을 잡았다.
그의 간절함이 닿은 결과물일까. 2014년 개봉한 '명량'은 1761만 명 누적 관객 수를 돌파했으며 이후 2022년 선보인 '한산: 용의 출현'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726만 명을 기록하며 영화관에 '이순신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영화를 넘어 하나의 프랜차이즈가 된 '이순신' 시리즈는 128분의 '명량', 129분의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이번에는 무려 153분의 러닝타임의 '노량: 죽음의 바다'를 선보이며 흥행 질주를 이어갈 예정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마지막, 삼국이 뒤얽힌 노량해전의 기록 =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7년이 지난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박용우)가 사망하고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들을 처단하려는 이순신(김윤석)의 이야기를 다룬다. 도망치려는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이무생) 일당을 놓아주는 것 대신 철저하게 잡아 섬멸하려는 이순신의 의지는 불타오르지만 당시 그와 조명연합함대를 꾸렸던 명나라 도독 진린(정재영)은 왜군에게 뇌물을 받고 퇴로를 열어주려 한다.
이에 분개한 이순신은 조선의 군사만이라도 나서 왜군을 섬멸하려고 하지만 시마즈 요시히로(백윤식)가 이끄는 살마군까지 퇴각 지원군으로 나서며 이순신의 상황은 불리해진다. 이때 이순신을 봐왔던 진린은 깊은 고민에 빠지고, 결국 이순신의 손을 들기로 결심하며 자신의 부도독 등자룡(허준호)과 함께 시마즈의 살마군에 대항해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박용우·이규형·이무생·허준호·정재영...현지인에 가까운 외국어 연기 = '노량: 죽음의 바다'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외국인 배역을 한국인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이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한 박용우는 '노량: 죽음의 바다'의 도입부를 열어주며 관객들을 압도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자신의 후손을 노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김민상)의 눈빛을 보고 분노하는 박용우의 연기는 당대 일본의 내부 분열과 권력 싸움을 단 3분 만에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흡인력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왜군에 속한 이규형과 이무생, 그리고 명군에 속한 허준호와 정재영의 외국어 연기도 완벽에 가깝다. 아리마 하루노부 역을 맡은 이규형에 따르면 일본어 연기를 위헤 네 명의 일본어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며 대사를 외웠다고. 더불어 정재영과 허준호 또한 전작 '실미도'(2003), '이끼'(2010) 등 다양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친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식사 시간 이외에는 만나지 않고 대사 연습만 했을 정도로 외국어 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100분의 해상 전투신...커진 스케일, 몰려오는 감동 = 조선, 명나라, 그리고 일본까지. 역사적으로 노량해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의 전쟁을 끝낸 대규모의 전투였다. 군사적인 규모와 동시에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개입되며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 전투였기에 이를 표현해야 했던 김한민 감독은 다양한 연출 장치를 작품 속에 넣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순신 3부작' 중 가장 다양한 배 종류들이 등장한다. 역사 속에서 왜군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구선(거북선)을 비롯해 협선, 판옥선 등 노량해전을 이기기 위한 전략들에 사용됐던 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물의 흐름, 바람의 속도 등 종잡을 수 없는 변수들이 적용되는 해전에서 쓰이는 다양한 전투 방식을 보여주며 100분에 달하는 해상 전투 장면을 지루하지 않게 보여준다.
더불어 바다 위에서 삼국이 치열하게 전쟁에 임하는 장면을 롱테이크 샷으로 포착한 장면이 인상 깊다.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쟁판 속, 그저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는 군사들의 모습과 살육의 현장 속에 놓인 이순신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동시에 포착한 장면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 대해 김한민 감독은 "삼국의 아비규환 속에 있는 이순신을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민식·박해일 계보 이은 '김윤석의 이순신' = 무엇보다도 '노량: 죽음의 바다'는 중심에 서있는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석의 공이 크다. 기자간담회에서 김한민 감독은 김윤석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명량'의 이순신이 불 같은 기운이고 '한산'의 이순신이 물 같은 기운이었다면 종결작 '노량'은 그 두가지가 복합된 시너지가 나와야 됐다"며 "그런 아우라를 가진 배우는 김윤석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시리즈 전작들인 '명량', '한산: 용의 출현'이 이순신의 지략적인 면모에 집중했다면 '노량: 죽음의 바다'는 조금 더 이순신의 개인적인 가정사와 내적인 면모를 조명한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순신이 셋째 아들 이면(여진구)이 살해당하는 악몽을 꾸고 복수심에 분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이순신의 삼남인 이면은 정유재란 당시 고향이었던 아산에 침략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이에 아들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던 이순신에 대한 기록은 그가 전쟁을 거치면서 기록했던 '난중일기'에도 남겨져 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왜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자식을 위한 복수심, 그리고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쟁을 끝내려는 대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이순신의 내적 감정을 다룬다. 하지만 끝내 이순신은 자신의 목숨을 복수에 쓰는 것 대신 군사들을 독려하는 몸짓에 바친다. 김윤석은 서사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이순신과 혼연일체가 되어 한국형 신파가 아닌, 담백한 울림이 담긴 연기로 이순신의 의지를 전한다.
12월 20일 개봉. 153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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