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플랫폼 사업자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나서자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과도한 이중 규제로 국내 IT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로 국내 플랫폼 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제정을 추진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은 시장점유율과 매출액, 이용자 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배적 사업자’를 선정하고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을 막는 게 주요 골자다. 업계에서는 법이 제정될 경우 규제를 받을 지배적 사업자로 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구글·메타 등을 꼽고 있다.
업계는 현행 공정거래법이나 심사 지침만으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한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사전 규제가 도입되면 이중 규제가 될 수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IT 관련 협회 관계자는 “기업별로 자율적으로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데 ‘선악 프레임’에 갇혀 이러한 노력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카카오는 영세·중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카카오 등의 수수료를 동결 또는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며 네이버는 9월 ‘네이버 이용자 보호 및 자율규제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는 등 상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도 규제 대상이 되겠지만 사실상 ‘네카오(네이버·카카오)’를 타깃으로 한 규제 방안”이라면서 “AI 등 기술 패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라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정부 규제가 국내 플랫폼 기업에 족쇄를 채우면 중국 등 해외 플랫폼이 반사 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최근 중국 알리바바그룹 산하 온라인 직구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와 중국의 쇼핑 애플리케이션 ‘테무’가 국내 e커머스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출 기준 등에 따라 이들 기업이 지배적 사업자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네이버와 쿠팡 같은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플랫폼 관계자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으로 수혜를 받는 기업은 국내 중소 플랫폼이나 스타트업이 아니라 현재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점유율을 갖고 있는 중국계 기업이 될 수 있다”면서 “공격적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경쟁을 제약하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행위는 충분히 사후 규제를 통해 제어할 수 있다면서 사전 규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전 규제 강화는 플랫폼 기업들이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면서 “규제가 있으면 혁신적인 사업을 도모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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