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권이 선심성 돈 풀기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중국 등 주요 국가에서는 재정 감축과 통화 긴축을 위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거치며 행정부와 중앙은행이 천문학적 돈 풀기에 나섰던 부작용이 점차 가시화하면서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구조적인 재정 축소를 위해 하원 예산위원회가 초당적 부채위원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주 위원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지만 3명의 민주당 소속 의원도 찬성표를 던졌다. 최종적으로 통과될 경우 16명의 위원들이 내년 5월까지 재정 개혁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게 된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 줄다리기가 한창인 2024 회계연도 본예산안 역시 사실상 ‘예산 감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예산안은 총 1조 6000억 달러 규모로 직전 회계연도보다 지출이 280억 달러 늘었지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예산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21일 현재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34조 700억 달러(4경 5558조 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통제 불능 상태’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확장 재정을 선호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 연설에서 “우리는 국가 부채를 갚을 것”이라며 “이제는 (갚아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유럽연합(EU)은 팬데믹 이후 중단했던 재정준칙인 이른바 ‘안정·성장 협약’을 다시 시행할 계획이다. 새 준칙이 시행되면 각국은 4년 내에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줄여야 한다. EU는 새 재정준칙을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된 6월 이전에 의회 승인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시행 시점은 2025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는 내수 위축과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로 ‘돈 풀기’ 요구가 거세지만 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2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1년 만기 연 3.45%, 5년 만기 연 4.20%로 각각 5개월, 7개월 연속 동결한 결정도 이를 반영했다는 평이다. 일본의 경우 아직 돈줄을 죄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일본은행(BOJ)이 23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마이너스 기준금리’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손볼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물가 상승률, 실질임금 등 지표 부진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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