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모두 세상을 통째로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잠재력과 파괴력을 지닌 기술이지만 시차를 생각하면 블록체인이 일상에 녹아드는 시점이 더 빠를 거라고 보고 있어요.”
모두가 AI만을 입에 올리는 요즘 블록체인의 잠재력을 AI에 견주는 사람은 드물다. 장현국(사진) 위메이드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블록체인이 긴 겨울 속을 헤맬 때도 잠재력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최근 위믹스 거래량 추이가 그리는 상승 곡선도 확신을 강화한다. 지난해 말부터 위믹스 거래량은 눈에 띄게 늘었고 의미 있는 우상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장 대표는 “블록체인의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는 거래량”이라며 “거래량은 곧 블록체인 플랫폼의 매출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성과지표(KPI)”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에게 지난해는 경영자로서 무척 힘든 시기였다. 공력을 쏟은 위믹스의 거래가 중지된 여파가 해결되기도 전에 김남국 전 의원의 위믹스 대량 보유 사실이 밝혀지면서 위메이드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까다로운 게임 이용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정치권과 일반 금융소비자들까지 비판에 가세하면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어려움이 찾아왔다. 뼈아픈 시간이었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굳은 확신이 그를 버티게 했다. 그는 “최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는 등 가상자산이 점점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느냐”면서 “제대로 된 블록체인 게임을 내놓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블록체인의 제도권화와 맞물리면서 계획이 잘 들어맞는 것 같아 신기하다”고 미소 지었다.
글로벌 출격 준비를 앞둔 대작 게임 ‘나이트크로우’에 거는 기대도 크다. 국내 버전과 달리 블록체인 플랫폼이 탑재된다. 위메이드는 나이트크로우가 올해 벌어들일 매출이 지난해 전체 회사 매출을 앞지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국내 출시된 나이트크로우는 9개월 만에 약 2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위메이드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6072억 원이다. ‘미르4’의 전례에 따라 글로벌 버전의 매출이 국내 버전 매출의 최소 2~3배가 된다는 가정 아래 6650억~9975억 원의 매출이 나온다는 계산이다.
장 대표는 2028년께 블록체인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 초 사내에 블록체인 조직을 만든 지 10년이 되는 해다. 당초 10명이라는 작은 조직으로 시작한 것도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블록체인이 미래 먹거리라고 생각했으면 대대적으로 팀을 꾸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들 묻는데 10년 장기 레이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10명으로 출발한 것”이라며 “조직이 작아야 회사의 냉철한 성과 평가에서도 살아남아 10년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장 대표의 예상도 빗나갔다. 당초 생각한 10년보다 사업화·수익화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는 “곧 나올 나이트크로우 글로벌 버전과 함께 올해 블록체인 사업에 폭발적인 성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지금 흐름대로라면 시작한 지 6년이 조금 지난 올해부터 ‘빅뱅’이 올 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는 코인들은 사라질 것이고 이후 살아남는 코인들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때 ‘한국의 일론 머스크’로 불린 장 대표는 이러한 수식어에 머쓱해했다. 자신은 머스크처럼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보다 누군가 열어젖힐 시대에 대비해 착실히 준비해온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사실 블록체인의 미래는 2008년 1월 누구나 다 똑같이 목도했고 머지않아 블록체인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것도 함께 예측했다”며 “블록체인 사업을 같이해온 후배들에게 우리가 스티브 잡스나 머스크처럼 뭘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만 대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을 때 재빨리 올라탈 수 있게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쪽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의 봄날을 확신한 그는 버티고 버텼다. ‘버티면 성공한다’는 말을 장 대표는 어느 날 자신의 직업적 커리어를 고민하던 중 가슴에 새겼다. 경력에 대한 고민으로 게임 업계에 들어온 자신을 자책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는 “모은 돈도 얼마 안 되는 것 같고 경력에 대한 후회가 들기도 했다”면서 “아쉬운 마음에 과거로 돌아가 비트코인이나 텐센트에 베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공상을 펼치다 생각 하나가 머리를 때렸다”고 회상했다.
“모바일 게임 시대가 온다고 누구나 생각했지만 300개가 넘는 모바일 게임사가 피처폰 시절을 못 버티고 모두 망했습니다. 막상 아이폰으로 시장이 열릴 때 남은 회사는 몇 곳 없었죠. 또 누구나 중국이 가장 큰 게임 시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수많은 시도와 좌절 끝에 포기했고 정작 중국이 최대 시장이 되고 나서는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측과 전망은 누구나 다 공유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죠.”
버티기는 ‘슬로 스타터’로 살아온 그의 인생과도 궤를 같이한다. 장 대표는 언제나 꾸준한 상향 곡선을 그리며 뒷심을 발휘하는 쪽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평범했던 학교 성적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서서히 우상향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가만히 있는데 친구들이 뒤로 물러서는 느낌”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해서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과정 때도 첫 학기는 늘 학사 경고를 맞았지만 KAIST를 졸업할 때 그의 손에는 우수논문상이 들려 있었다.
장 대표는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란에 ‘회사 대표’를 적어냈다고 한다. 몸이 편찮았던 어머니를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는 “부자 되는 방법을 어른들에게 물으니 경영학과에 진학해 회사 대표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꿈을 정했다”고 회상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그는 경영학도 그 자체였다. 최고경영자(CEO)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대학에 진학한 그는 처음 학교 분위기에 놀랐다. 경영학 전공 공부보다는 온통 공인회계사(CPA)나 행정고시 준비에만 열의를 보이는 선후배들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CEO를 꿈꿨던 장 대표는 경영학 이론에 진심이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각종 경영 관련 이론들을 인용했다. 그는 성과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역시 인센티브와 생산성에 대한 그의 지론이 투영된 것이다. 장 대표는 “능력에 따라 보상에 차이를 두면 직원 불만이 생길 수 있지만 그걸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경영의 한 축이고 인사 정책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게임 산업은 투입한다고 산출물이 나오는 공장이 아니며 극도의 창조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개인의 성과도 천차만별”이라며 “일부 창의적인 인력의 기여도가 결정적인데 이들에 대한 보상을 보장하지 않으면 붙잡아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지금껏 자신이 거쳐온 길을 돌이켜보면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연설에 나오는 구절 ‘커넥팅 더 닷츠(Connecting the dots)’가 겹쳐진다고 회고했다. 여러 점이 선으로 연결되듯 관련 없어 보이는 인생 경험이 모여 어떤 일을 해내는 데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김정주 넥슨 창업자를 따라 게임 업계에 들어온 것이나, 한때 진로 고민을 했지만 결국 게임사에 남은 것 등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결정했던 것이 서로 연결되는 것 같다”면서 “위메이드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하는 것 역시 그 연결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장 대표는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지금 하는 사업이 이제는 소명처럼 다가온다”면서 “위메이드 대표직이 아마 마지막 직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기여할 수 없다면 재미를 느낄 수 없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은 누구보다 싫어하는 성격”이라며 “능력이 닿는 한 회사에 더 많이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He is…
△1974년 서울
△1996년 서울대 경영학과
△1996년 넥슨 입사
△199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과 석사
△2000년 네오위즈게임즈 전략기획그룹 재무그룹장
△2008년 네오위즈게임즈 최고재무책임자(CFO)
△2011년 네오위즈모바일 대표
△2013년 위메이드 전략기획본부장
△2014년 위메이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