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파업하실 거예요?"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2일 의과대학 증원을 둘러싼 강대강 대치 국면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불쑥 최근 만난 환자 얘기를 꺼냈다. 공황장애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선생님도 파업을 하면)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동안 의사 선생님들을 존경했는데, 환자를 버리고 파업하는 모습에 너무 놀랐다는 환자의 말에는 실망감이 짙게 묻어났다. 정 전문의는 “나름 탄탄한 신뢰관계를 맺었다고 여겨온 환자라 더욱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며 “의사와 국민 모두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기”라고 운을 뗐다.
그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지식이나 기술보다 상호 신뢰관계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라포(rapport)’라고 부른다. 의대에 입학해서부터 수련을 받는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표현이기도 하다. 라포가 좋으면 치료 경과가 더욱 좋아진다. 반면 라포가 안 좋으면 치료가 더딜 뿐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 분쟁이 일어난다. 마음이 아픈 환자들이 찾아오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정 전문의는 “라포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이 환자를 남겨둔 채 사표를 내고 병원을 떠나고 있다”며 “필수의료 위기를 해결한다면서 자칫 더 큰 위기를 초래하게 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정책을 아무리 개선한들, 이번 사태를 겪으며 깨어져 버린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가 회복되긴 쉽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의사와 정부의 신뢰 관계는 봉합할 방법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다
정 전문의는 “의사로서 환자들과의 신뢰를 저버린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의사를 두둔하거나 편을 들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비극의 원인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발표한 정부에게 있다고 짚었다. 정부가 의료계와의 충분한 협의는 커녕 세밀한 사전 조사,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강압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탓에 의사들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거리로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정 전문의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지시하는 입보다 듣는 귀가 우선이어야 한다.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자신의 안위와 이득을 내려놓은 채 희생하며 국민의 신뢰를 쌓아온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명령과 강압만 일삼는 정부는 라포 형성에 있어 낙제점”이라고 꼬집었다. 설득 과정을 무시한 채 국가 지도자가 강력한 명령을 내리는 게 당장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종국에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 상호 불신, 사회 갈등만 남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의사가 부족하다, 아니다를 두고 연일 평행성을 달리는 상황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빨리 비극적 사태가 수습되고 우리 사회에서 경청과 이해, 공감이 회복되길 바란다”며 “더 큰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의료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