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60달러 선이던 국제유가가 올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며 80달러를 넘어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이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않는 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자발적인 감산 조치를 6월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수급 우려를 키우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석유 수출국들이 감산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할 경우 유가가 90달러 선도 돌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OPEC+ 회원국들은 3일(현지 시간) 자발적 원유 감산 조치를 2분기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달 말 만료될 예정이었던 하루 100만 배럴의 감산 규모를 유지해 산유량을 900만 배럴로 제한할 계획이다. 러시아 역시 1분기 하루 50만 배럴을 줄인 데 이어 6월까지 47만 1000배럴을 추가로 감산한다. OPEC 내 주요 산유국인 이라크와 아랍에미리트(UAE)는 하루평균 산유량을 각각 22만 배럴, 16만 3000배럴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쿠웨이트·알제리·카자흐스탄·오만 등도 감산 유지에 동의했다.
국제유가는 OPEC+의 감산 연장 조치를 선제적으로 반영하며 급등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북미산 원유를 대표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분 가격은 1일 2.19% 오른 배럴당 79.97달러로 거래를 마쳤는데 4일에는 장중 80.37달러까지 치솟으며 수급 불안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69달러 선으로 진정세를 보이던 WTI 가격은 최근 3개월 동안 16% 가까이 올랐다. 북해산 브렌트유 5월분 가격은 1일 배럴당 83.55달러로 지난해 11월 6일(83.70달러) 이후 4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날 장중 83.97달러까지 올랐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한 수급 불안이 국제유가의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예멘의 친(親)이란 반군 후티가 홍해에서 민간 상선을 겨냥한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원유선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을 경유하는 항로로 우회하고 있다. 이에 해상 운송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 물류비 역시 폭등하고 있다. BBC는 “운송 항로를 바꾼 선박들의 배송 시간이 3~4주 늘어났으며 일부 기업들의 컨테이너 임대 가격은 (홍해 사태 이전보다) 300%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서방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제한한 데 이어 러시아 유조선의 발을 묶는 등 제재를 강화하는 점도 공급망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두 개의 전쟁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점, 산유국들이 연말까지 감산 조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국제유가가 더 오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지난주 “브렌트유 가격이 심리적 저항선인 85달러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2분기 배럴당 95달러 선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지난주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기존 85달러에서 87달러로 상향 조정하며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으로 인한 지지세 속에 유가는 단기적으로 배럴당 70~90달러 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