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4일(현지 시간) 내란 선동 혐의를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가도에 탄력이 붙게 됐다. ‘슈퍼 화요일(5일)’을 하루 앞두고 출마 자격 시비 문제를 털어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기소를 ‘마녀사냥’으로 규정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공세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반란 가담자의 공직 취임을 금지한 수정 헌법 14조 3항을 근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경선 출마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을 파기했다. 앞서 콜로라도주와 함께 메인주·일리노이주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공직 선거 출마 자격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날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모두 무효화됐다.
이날 연방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개별 주는 연방 공직 후보를 선거에서 제외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 우위(대법관 6명 보수, 3명 진보)’ 구도이지만 모든 대법관이 개별 주가 헌법을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특히 절반을 넘는 5명의 대법관들이 “헌법은 개별 주가 아닌 의회가 만들었다. 이에 따라 수정 헌법 14조 3항을 시행할 책임은 개별 주가 아닌 의회에 있다”면서 “후보 자격 박탈을 위해서는 연방 차원의 법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 의회의 별도 입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사실상 법정 투쟁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막을 방법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미국을 위한 승리”라고 치켜세우며 화살을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으로 돌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나는 바이든에게 (사법기관을) 무기화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당신의 싸움은 스스로 싸우라”고 직격했다. 이어 “당신의 적을 손상시키기 위해 검사와 판사를 이용하지 말라”면서 “미국은 그런 것을 용인하지 않는 나라”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대법원 판결에서 신속하게 치고 나가 여러 관할 지역에서 자신에 대한 기소가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한 정치적 모략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선 과정의 중대한 사법 리스크를 제거하면서 예상대로 이달 중순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노스다코타주의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도 승리를 거머쥐며 독주 체제를 확고히 했다. 공화당의 경우 전체 대의원의 과반인 1215명을 확보해야 최종 후보로 지명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슈퍼 화요일(대의원 874명)인 5일 경선을 석권할 경우 12일이나 19일께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숫자를 확보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장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그의 사법 리스크는 대선 국면에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판결은 올해 대선 과정에서 그의 주요 법적 싸움 중 첫 번째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4건의 기소를 통해 91건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 중 ‘성추행 입막음’ 혐의와 관련된 재판이 이달 25일 뉴욕에서 열린다. 특히 대법원은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혐의 등으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면책특권을 인정할지에 관한 심리를 4월 말께 시작해 6월 중순 즈음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곧 나올 다른 판결은 대통령에 대한 면책특권이 될 것”이라면서 “이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대통령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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