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방문한 전북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생태탐방지. 탐방안내소 입구에서 10여 분 간 전기 기차를 타고 이동하자 생태탐방 1코스 시작점인 고창고인돌유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전북 지역 고인돌의 65% 이상인 1748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고인돌 유적지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의 고인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고인돌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에는 각각 고유 번호가 부여돼 있다. 유적지에 난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고인돌이 넓게 펼쳐진 완만한 산등성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상징물로도 사용되던 고인돌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청동기 시대의 문화를 상상해볼 수 있다.
고인돌유적지의 완만한 경사로가 끝나면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운곡습지 지형이 시작된다. 습지 생태연못 입구에 들어서자 버드나무들이 종마다 각기 다른 색의 새순을 내밀며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좁게 만들어진 나무 데크를 따라 걷자 물이 차오른 고요한 습지가 발 아래로 펼쳐졌다. 30년 넘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낸 생태계가 자리 잡은 곳이다.
운곡습지는 2011년 3월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뒤 불과 한 달 만인 같은해 4월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람사르습지는 습지 보전을 위한 국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따라 지정된다. 람사르 협회는 독특한 생물지리학적 특성을 가졌거나 희귀 동·식물종이 서식하는 습지를 람사르습지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고창 지역은 8000만년 전 발생한 화산폭발로 인해 유문암과 응애암으로 구성된 암석 기반이 형성되면서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지형적 특성을 띄고 있다. 이로 인해 가뭄뿐 아니라 홍수도 잘 일어나지 않아 1년 내내 일정량의 물이 고여있는 습지 지형이 유지된다.
운곡습지는 한때 농경지로 마을 주민들이 논 농사를 지으며 살던 곳이다. 1980년대 초 영광 원자력발전소 발전용수 공급 목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차츰 타지로 이주하며 남겨진 폐경작지가 산지습지의 지형으로 복원됐다.
습지에 풀이 모여 자란 사초군락지에는 푸른 풀들이 한 뼘 쑥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습지 자연환경해설사는 이날 “한 달 쯤 지나 사초군락의 풀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나면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절경이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봄의 초입을 맞은 운곡습지에서는 생물들의 활발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노랑목도리담비가 물을 먹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길 너머 물웅덩이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달이 물장구를 쳤다. 이처럼 운곡습지에는 수달, 삵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비롯해 850여 종의 생물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환경부는 전북 고창의 고인돌과 운곡습지를 4월 ‘이달의 생태관광지’로 선정했다. 환경부는 자연환경의 특별함을 직접 체험해 자연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기 위해 올해 3월부터 매달 1곳을 ‘이달의 생태관광지’로 선정하고 있다.
4월 고창에 방문하면 고인돌과 운곡습지 외에도 이달 20일부터 5월 12일까지 열리는 청보리밭 축제와 고창읍성, 선운산 도립공원 등을 함께 둘러볼 만하다. 뽕잎차 다도체험, 누에고치 공예 등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생태관광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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