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성수동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술관인데, 안 가보셨어요?”
머쓱했다. 여기서 말하는 ‘잘나가는’이란 방문객이 많고, 장사가 잘되며,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성수동뿐만 아니라 용산·강남·일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미술관인가요? 미술관이 맞나요?”라고 되물었어야 했다.
그 미술관은 ‘진짜 미술관’이 아니었다. 엄밀히는 카페인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음료를 마시면서 제공받은 미술 도구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체험형 테마 카페였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예술 체험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까닭에 번창하는 사업이지만 미술관이라는 개념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갤러리’라는 상호를 쓴 인테리어 업체와 카페들이 있는가 하면, 미술관이란 뜻의 ‘뮤지엄’을 이름에 붙이고 그림을 파는 화랑도 부지기수다. 우리는 키즈 카페를 유치원이라 하지 않고, 서점과 책방을 도서관이라 부르지 않는다. 갤러리나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그 이름으로 불릴 때는 그에 합당한 기능과 성격이 갖춰져야 한다.
미술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부쩍 늘었다. 2018년을 지나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아트페어와 대형 전시를 찾는 관람객 수가 많아졌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문화 소비에 대한 욕구가 급증했으며, 어릴 적부터 문화 향유를 경험하며 성장한 MZ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등장하면서 달라진 풍경이다. 그런 수요를 공급자인 미술관·갤러리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정책·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한 경향이 있다. ‘가짜 미술관’의 성행이 그런 사례다. 소장한 미술품 한 점 없이 디지털 이미지만으로 현란한 볼거리를 꾸민 ‘뮤지엄’은 연일 매진에 오픈런인 반면 ‘진짜 미술관’은 몇 달간 준비해 전시하고도 관람객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미술관·박물관은 무엇인가. 2022년 8월 개정된 국제박물관협회(ICOM)의 정의에는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기관”이라는 성격과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하고 전시하는 기관”이라는 기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ICOM은 시대 변화에 맞춰 박물관 정의를 고쳐 쓰는데, 최근에는 박물관의 접근성, 포용성, 다양성, 지속 가능성 등의 개념이 추가됐다. 확고한 점은 미술관과 박물관은 작품을 사고파는 영리시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술관은 여기에다 소장품 연구·보존과 전시, 교육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림 거래가 이뤄지는 영리 업체는 갤러리 또는 화랑으로 불린다. 갤러리·화랑이라는 이름도 엄밀히는 아무 시설에나 붙여서는 안 된다. 갤러리와 화랑은 발굴한 전속 작가를 두고 자체 기획한 전시를 하는 곳이다. 공간 임대료를 받고 대관하는 전시장은 부동산업에 속하지 화랑업은 아니라는 뜻이다.
수년 전 미술진흥법에 대한 논의와 함께 ‘화랑업 허가제’가 검토된 적이 있다. 미술관·갤러리·화랑 등의 상호는 일정 자격을 갖춘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이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미술진흥법’에서는 이 부분이 빠졌다. 이 법안이 ‘미술유통법’의 성격이 강하고, 규제 완화를 강조하는 기조에 맞지 않다고 여겨진 까닭이다. 미술진흥법에서는 ‘미술 서비스업’이라는 개념 아래 화랑업, 미술품 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대여·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 전시업을 뭉뚱그려 포괄하고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엄연히 다른 기능을 가진 주체들이 혼란을 초래하는 상황은 걱정이다.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인 양지연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뮤지엄(박물관·미술관)은 세제 분류 코드에서 비영리 조직으로 등록해 세제 혜택을 받고, 비영리 기관으로서의 운영과 이사진 구성에 대한 원칙이 명확하고, 평가인증제도도 갖추고 있다”면서 “미술관과 상업 화랑, 여타 업체의 명칭 사용을 법으로 구분할 일은 아니지만 관련 협회를 통해 합의를 구하거나 대중적 인식을 제대로 할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작품은 상품이 아니다. 예술품의 가치는 규격화하고 일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의 의견이 중요하고, 미술관 같은 기관의 권위가 막강하며 갤러리의 역할이 절실하다. 문화 강국 대한민국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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