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물가를 잡기 위해 1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대거 방출한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가운데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미 에너지부는 21일(현지 시간) 성명을 내고 “차량 운전이 많아지는 여름철을 앞두고 정부는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100만 배럴의 휘발유를 뉴잉글랜드주 북동부휘발유공급저장소(NGRS)에서 방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미국인들이 여행을 많이 떠나는 ‘메모리얼데이(5월 27일)’와 ‘독립기념일(7월 4일)’ 연휴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은 “열심히 일하는 미국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3개 주와 북동부에 충분한 휘발유 공급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앞서 2022년에도 기름 값을 낮추기 위해 비축유를 방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유가가 들썩여 미국 휘발유 값이 갤런당 5달러를 돌파하는 등 불안이 높아질 때였다. 다만 지금은 갤런당 평균 3.5~3.6달러 수준을 유지하는 등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비축유 방출이 11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공화당 의원들은 정부의 결정에 대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트 리케츠 상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연방 비축유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비상사태’가 아니라 실제 비상사태에 사용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바이든 행정부에는 대통령의 인기 하락은 주유소 가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확신하는 관리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실제 고물가·고금리 환경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불신하는 유권자들은 백악관의 최대 걱정거리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 미시간대 로스경영대와 함께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는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반대한다’고 밝혔으며 80%는 ‘높은 가격에 재정적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특히 지지하는 후보와 상관없이 ‘경제는 누가 더 잘 다룰 것 같으냐’는 질문에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가 43%로 바이든 대통령을 지목한 응답자(35%)보다 높았다.
다만 휘발유 가격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당시보다 60%가량 높은 데다 지역별로 5달러를 웃도는 곳도 있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휘발유 가격은 3%대에 고착화된 소비자물가지수(CPI)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무디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를 넘을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다만 100만 배럴(약 4200만 갤런)은 미국 휘발유 사용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해 이번 조치가 휘발유 가격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하루 평균 약 900만 배럴의 휘발유를 소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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