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사업으로 철거가 이뤄지면 원래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는 무엇이 남겨질까. 사진작가 강홍구는 뉴타운 사업으로 철거가 한창이던 서울 은평구 불광 2, 6구역을 돌아보다 현장에서 노란색 벽과 분홍색 지붕의 이층 양옥집 형태의 장난감을 발견한다. 이 장난감의 이름은 ‘미키네 집’. 작가는 이 장난감을 폐허가 된 철거 현장 곳곳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아이들의 동심이 담긴 ‘허구’에 가까운 장난감이 폐허 위를 여행하며 ‘현실’ 속 허구를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재개발·재건축을 향한 인간의 허황된 열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최근 현대 사회의 세태를 반영하는 사진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적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서울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에 작가들은 사진을 단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도구만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연출을 통해 사진으로 담을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유할 거리를 던진다.
작가 강홍구는 기획과 연출을 통해 ‘도시’로서 서울의 의미를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에서 8월 4일까지 열리고 있는 ‘서울: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은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의 소장자료 기획전으로, 미술관이 소장한 강홍구 컬렉션을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로 재구성한 전시다.
전시는 2018년 불광동 작업 컬렉션 5000점과 2003년 추가 기증한 은평뉴타운 작업 컬렉션 1만 5600여 점의 디지털 자료로 이뤄져 있는데 전시를 통해 10여 년간 지금은 ‘은평뉴타운’이라 불리는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재개발 지역의 변화와 돈으로 움직이는 서울 도시사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전시는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 ‘기록에서 기억으로’라는 두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작가의 작품에서 배경이었던 서울이 점차 주요한 주제가 되는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살펴보고, 재개발로 인해 변화하는 서울의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만머핀에서는 6월 22일까지 미국 출신 알렉스 프레거의 개인전 ‘웨스턴 메카닉스’가 열리고 있다. 프레거는 영화감독 출신의 사진작가다. 전시 제목인 ‘웨스턴 메카닉스’는 작가의 첫 장편 영화인 ‘드림퀼’ 제작과 병행해 기획된 전시로, 기술의 발전과 자연 질서의 와해를 이야기 한다. 작가는 조작된 기억이나 꿈처럼 느껴지는 고도로 감정적인 순간을 연출해, 유머를 더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고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연상케 하면서 기절하거나 고함을 지르는 여러가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작품 ‘웨스턴 메카닉스’를 비롯, 비키니 여성 이미지의 ‘캘리포니아’ 등은 모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철저하게 작가의 연출에 의해 탄생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출신 리차드 미즈락의 국내 첫 개인전도 흥미롭다. 작가는 지난 1970년부터 광활한 규모의 공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정치, 사회, 환경 문제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해 왔다. 그의 작품은 미국 서부 사막의 화재, 핵실험장, 동물시체 매립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풍경 등 인류의 삶을 바꿨다 할 수 있는 굵직한 이슈 속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자연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여 년 간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데, 특히 갤러리 2층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작가가 제작한 ‘코끼리 우화(Elephant Parable)’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화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모두 하와이의 대나무 숲을 담은 하나의 이미지에서 파생된 것으로 작가는 사진 속 숲을 색상을 바꾸거나 일부를 확대하는 등으로 다양하게 변형해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경험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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