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월가에서 미국 국채금리 상승 압력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국채 재매입(바이백)과 양적긴축(QT) 속도 조절을 통해 국채 시장 유동성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면서다. 다만 유동성 공급으로 인플레이션이 재점화하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달 1일 발표했던 국채 바이백을 29일부터 실시한다. 계획에 따르면 재무부는 7월 말까지 1개월물부터 30년물 국채까지 20개 권종에 대해 총 150억 달러 규모의 재매입을 실시한다. 바이백은 재무부가 발행했던 국채를 사들여 조기 상환(소각)하는 정책이다. 신규 채권을 발행해 수요가 낮은 오래된 채권을 매입하는 구조다.
미국의 국채 바이백은 24년 만이다. 미국 정부는 2000년 3월부터 2002년 4월까지 총 675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한 바 있다. 당시 이례적인 재정 흑자를 기록하면서 여유분의 현금을 활용해 이자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번 바이백은 연방정부가 적자를 보고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목표 자체가 다르다. 이번 바이백의 취지는 국채 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에 있다.
미국 국채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높인 후 매수가 줄어 유동성이 쪼그라들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미국 국채 유동성지수는 2021년 6월 0.58에서 현재 4.06으로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숫자가 높을수록 유동성이 메말랐다는 의미다. 유동성 감소의 여파로 미국 10년물 수익률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인 4.5%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국채의 유동성지표는 최근 몇 년 동안 위기 수준에 도달했다”며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핵심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번 바이백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유동성이 낮은 국채를 정부가 매입하면 주요 금융기관은 매수자가 없어 팔 수 없었던 자산을 손쉽게 매각할 수 있다.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은행들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헐값에 매각해야 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은 재무부 바이백이 수요가 부족한 일부 국채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효과를 넘어 국채 수익률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장기물 금리에 대한 지속적인 하향 압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바이백이 시장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양적완화(QE)는 아니지만 재무부의 꾸준한 국채 매수가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연준의 QT 속도 조절도 채권 유동성을 지원하는 요인이다. QT는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 등의 만기가 도래했을 때 재매입하지 않고 연준의 장부에서 털어내는 방식의 긴축 정책 도구다. 연준은 앞서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다음 달부터 보유 국채 경감 규모를 월 60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줄이기로 했다.
다만 국채금리가 내려가게 되면 당장 인플레이션에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채 금리가 낮아지면 모기지나 학자금 등 각종 대출금리도 떨어져 시중자금 수요가 커지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현재 경제를 누르지도 부양하지도 않는 수준의 미국의 10년물 금리는 4.5%로 추정한다”며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4.5%를 밑돌 경우 물가를 낮출 수 없다는 의미”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반면 중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미국 연방 부채 문제로 인해 국채금리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티로우프라이스의 스테판 바톨리니는 “두 기관의 행보가 채권 거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이며 최근 지표는 금리 인하가 근시일 내에는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바이백을 통해 국채 가격을 올려서 시중금리를 끌어내리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