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한 A 씨는 입원 기간 중 외출해 병원 밖에서 식사를 하고 심지어 해외를 오간 정황도 발각돼 재판에 넘겨졌다. 인천지방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휴대폰 발신국 위치 내역이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보면 입원 기간 중 잦은 외출 또는 외박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차례 외출·외박을 했다는 것만으로 입원 치료의 필요성을 부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A 씨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4일 법조계와 보험 업계에 따르면 보험사기 정황이 뚜렷하지만 무죄가 나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최근 법원이 과거보다 더 엄격하고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면서 보험사기에 대한 유죄를 입증하기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 관련 보험사기 사례가 대표적이다. 보험사기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청구했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해야 하는데 교통사고 특성상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검찰 역시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사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병원에 23회에 걸쳐 입원하며 4년여간 6억 7000만 원의 보험금을 타낸 B 씨에 대해서도 “어떤 환자가 평균적 치료 기간 이상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 때문에 보험사기 사건의 경우 피해 복구가 매우 어렵고 피해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피해 회복이 쉽지 않은 보험사가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손실액은 결국 선량한 가입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 현실이다.
관련기사
서울대와 보험연구원의 연구용역에 따르면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사의 손실액은 2018년 연간 6조 2000억 원에 달한다. 한 가구당 30만 원 안팎의 보험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질병이나 상해 치료를 할 때 보상하는 실손보험도 지난해 1조 9738억 원의 적자를 봤다. 2022년 당시에는 전체 가입자의 2%가 1000만 원 이상의 보험금을 타갔는데 가입자의 63%는 보험금 청구를 한 푼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된 만큼 ‘경미한 사기’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보험사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도 커지면서 관련 비용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 또한 보험료 상승과 보험금 지급 심사 분쟁의 이유가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40여 개 보험사에서 활동하는 보험사기조사(SIU) 인력은 6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새 200여 명가량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보험사기 등으로 손해율이 치솟자 적자를 견디지 못한 일부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판매 자체를 중단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2011년 이후 생명보험사 11곳과 손해보험사 3곳이 실손보험 판매를 포기했다. 현재 실손보험을 판매하는 곳은 생보사와 손보사가 각각 6곳, 10곳에 그친다.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손해율 상승에 따른 보험료 인상도 불가피하다. 보험 가입 심사와 보험금 지급 심사 문턱도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험사기를 줄이지 못하면 최종적으로는 선량한 가입자만 손해를 보게 될 수 밖에 없다”며 “보험사기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보험 시장 왜곡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