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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예술을 대하는 네 가지 태도

심상용 서울대학교 미술관장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1665, 캔버스에 유채, 46.5 x 40㎝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이다. 1999년 미국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이 작품을 모티브 삼아 소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썼다. 소설에는 주인공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둘러싸고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네 인물은 각각 예술을 대하는 네 가지 상징적인 태도를 대변한다.

페르메이르의 부인 카타리나는 아내와 엄마로서는 성실하지만 그녀에게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녀 자신과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이고 풍족하게 하지 못하는 그림은 그녀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런 이유로 페르메이르는 카타리나를 결코 자신의 화실에 들이지 않는다. 페르메이르의 장모인 마리아 틴스는 부유한 가톨릭 가문 출신으로 어느 정도 그림에 대한 지식이 있고 사위의 고충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늘 현실을 인정하고 타협하라고 페르메이르를 압박한다. 그녀에게 현실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다. 예술은 그것을 넘어설 수 없으며 넘어서려 해서도 안 된다.



반 라이번은 페르메이르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단골 고객이자 후원자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주문자이기도 하지만 교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난봉꾼이다. 그는 이미 페르메이르의 하인을 임신시킨 전력이 있으며 소설의 주인공인 그리트에게도 그럴 요량으로 기회를 보는 중이다. 그에게 그림은 부의 과시를 위한 수단이거나 성적 욕망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페르메이르는 라이번 같은 사람을 위해 신이 부여한 재능을 소모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회의감을 느끼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림을 그만둘까 번뇌한다. “신의 선물을 라이번 같은 자의 얼굴에 배어 있는 천박함을 감추는 데 쏟아 부어야 하는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는 것도 진절머리가 난다. 그가 남긴 작품이 모두 합쳐도 채 40점이 안 되는 이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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