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둔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권이 무차별적인 포퓰리즘 공약으로 자국 경제는 물론 유럽 경제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각 정당들이 한 표라도 얻기 위해 경제에 독이 되는 감세 및 지출 공약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우파든 좌파든 ‘경제 포퓰리스트’가 정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산업계와 투자자는 물론 유럽연합(EU)까지 불안에 떠는 모습이다.
◇英 ‘세금 동결’ 공약 경쟁…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다음 달 4일(이하 현지 시간) 총선을 앞둔 영국에서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감세 전쟁’이 한창이다. 집권 보수당과 노동당은 모두 병원과 학교 등 공공 서비스 부문에 대한 개선을 약속하면서도 세금은 올리지 않겠다고 단언해 논란을 빚고 있다. 영국의 독립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 선거에서 ‘세금 동결’을 선언한 분야와 건수가 신기록을 수립했다”며 “양당 모두 실질적인 문제를 직면하지 않은 채 ‘침묵의 공모’를 하고 있으며 유권자들은 대규모 세금 및 지출에 대한 정보를 거의 받지 못한 ‘지식 공백’ 속에서 투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실제 IFS에 따르면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영국 정부 세수의 약 60%를 차지하는 3대 세금인 소득세와 국민보험기여금(NIC), 부가가치세(VAT)에 대한 동결 혹은 인하를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인력을 확충해 대기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병원을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국방 지출을 늘리고 학교 교사들의 임금을 실질 수준에서 보장하겠다고 했다. 이에 들어갈 돈은 많은데 세율은 동결하는 포퓰리즘 공약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폴 존슨 IFS 소장은 “공약에서 밝힌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인상하거나, 아니면 약속하지 않은 법원이나 교도소 등의 분야에서 급격한 지출 삭감이 있을 것”이라며 “혹은 돈을 더 많이 빌려서 부채를 더 오래 갚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IFS는 양당이 3대 세금의 동결을 약속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외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당이 우세를 점한 상황에서 자본이득세와 부자에 대한 증세가 거론된다. 헬렌 밀러 IFS 부국장은 “자본이득세로 ‘큰돈’을 모으려면 정치적으로 이해받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하며 이는 곧 투자 저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佛 ‘지출 확대’ 한목소리…재정적자 우려 커진다=프랑스에서는 이달 30일과 다음 달 7일 실시되는 두 차례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극우 국민전선(RN)과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한목소리로 ‘관대한 지출’을 약속했다. 선두를 달리는 RN의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는 다수당이 되더라도 ‘합리적인 지출 계획’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2022년 대선에 출마했던 마린 르펜의 ‘1000억 유로짜리’ 공약(정년 단축, 30세 미만 소득세 폐지, 휘발유 부가가치세 인하 등)이 있었던 만큼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RN은 또 ‘연금 개혁’을 폐기해 은퇴 연령을 64세에서 62세로 되돌릴 계획도 갖고 있다. 독립 경제 기구인 OFCE에 따르면 이는 120억~130억 유로의 지출이 발생하는 공약이다.
NFP도 공공 부문의 임금 인상과 연금 개혁 폐기, 최저연금 인상안 등 급진적인 공약으로 가득하다. 50만 개의 보육시설에 자금을 지원하고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계획도 내놓았다. NFP 소속 후보인 발레리 라보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들을 실행하려면 총 1060억 유로가 필요하다. NFP는 부유세를 부활하고 상속세를 올려 재원을 마련할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의 국민총생산(GDP)대비 세금은 이미 선진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어느 곳보다 높으며 NFP의 프로그램은 기업 신뢰를 무너뜨리고 경제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어느 쪽이 되든 지난해 기준 GDP의 5.5%에 이르는 프랑스 재정적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프랑스 국채에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며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금리 차)를 80bp(bp=0.01%포인트)까지 벌렸다. 알리안츠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루도빅 수브란은 “좌파는 자본 도피를, 극우파는 부채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며 “프랑스의 위험 프리미엄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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