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가 달러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다극 체제(multipolarity)’로 재편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꺼내든 핵심 전략이 바로 달러의 균열이다. 글로벌 질서를 둘러싼 힘겨루기는 외교 안보를 넘어 통화 전쟁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달러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공격은 외환과 무역결제 분야에서 중심 통화 지위를 끌어내리는 데 집중되고 있다. 전 세계 무역과 금융이 달러로 이뤄지는 한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자인 조지 프리드먼은 “러시아 전쟁의 교훈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름 아닌 달러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27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외환거래에서 달러 비중은 88.5%에 이르며 글로벌 무역결제에서는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19일과 20일 북한과 베트남을 잇따라 방문하면서 군사·외교 관계 강화와 함께 루블화를 활용한 무역 확대를 추진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상호 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 관영지에도 “(달러가 아닌) 러시아 루블화와 베트남 동화로 결제를 실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상호 무역에서는 달러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최근 양국 무역에서 위안화와 루블화를 통한 결제 비중이 90%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중국은 디지털 통화와 페트로 위안화(원유 거래 위안화 결제) 분야에서 달러를 파고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위안화 결제를 받아들이고 러시아와 이란이 제재 회피에 나서면서 원유 거래에서 비달러 통화 비중은 20%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국제결제에서 달러 대신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를 쓰려는 중국의 ‘엠브리지 프로젝트’도 성과를 얻고 있다. 엠브리지는 디지털통화로 전 세계로 무역 대금을 결제하거나 송금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2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BIS는 “엠브리지는 이제 (고객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최소기능제품(MVP) 단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엠브리지는 결국 디지털 위안화가 기업 거래에서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에 미국과 유럽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윌리엄 잭슨은 “수십년을 유지한 시스템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에 탈달러가 진행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럼에도 소규모 단위에서라도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미국의 제재 효과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달러 대체는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대서양협의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브릭스 국가들은 주요 7개국(G7)에 대응해 통화동맹을 맺고자 했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협상이 쉽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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