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러시아 경제를 압박하려는 서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교역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매우 실망스럽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반면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포함해 인도는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크렘린궁과 외신 등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8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푸틴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 문제와 경제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두 나라는 현재 650억 달러(약 90조 2000억원) 규모인 연간 무역 규모를 2030년까지 1000억 달러(약 138조 8000억원)까지 늘리기로 약속했다. 인도는 러시아산 석유와 비료를 더 많이 수입하고 농산물과 산업 제품 수출을 늘릴 계획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 3연임이 확정된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러시아를 택해 눈길을 끌었다. 모디 총리가 부탄, 몰디브, 스리랑카 등 이웃 국가들 대신 러시아를 가장 먼저 방문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그만큼 러시아와의 관계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특히 인도의 전략적 라이벌인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점점 더 긴밀해지는 것에 대응하는 움직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소장인 알렉산더 가부예프는 “인도는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낼 수는 없더라도, 러시아가 모든 달걀을 중국의 바구니에 넣는 것을 막을 기회를 최대한 주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인도는 히말라야 국경을 따라 중국과 분쟁 중이며 러시아의 중립이 국가 안보적으로 중요하다. 실제 이번 방문 중 모디 총리는 러시아를 향해 “어떤 날씨에도 변함없는 친구”라고 칭송했다.
러시아로서도 모디 총리의 이번 방문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노력을 저지하고 중요한 무역 파트너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했다. 러시아는 현재 인도의 최대 무기·석유 공급국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디 총리를 대통령 관저로 불러 각각 통역 한 명 씩만 대동한 채 일대일로 5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등으로 특별한 대우를 했다. 또 모디 총리에 성 앤드류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에 앞서 모디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언급했지만 러시아의 침략을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러시아의 편을 들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무고한 아이들이 죽으면 가슴이 아프고 고통을 끔찍하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말한 채 러시아산 석유의 구매를 늘렸다. 푸틴 대통령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함해 가장 심각한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대답했다.
한편 인도의 이번 러시아 순방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모디 총리의 방러 기간인 지난 8일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키이우 등 주요 도시를 겨냥한 공격으로 41명이 숨지고 190여명이 부상하는 등의 대규모 공습이 일어난 점을 지적하며 “이런데도 러시아를 방문하다니 실망스럽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반면 미 백악관은 모디 총리의 러시아 방문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포함해 인도는 미국과 완전하고 진실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전략적 동반자인 점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인도를 포함해 모든 국가들이 지속적이고 공평한 평화 유지를 위한 노력을 지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인도와 러시아의 오랜 관계가 푸틴 대통령을 설득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을 종식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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